이민자 동화 강요 … 프랑스 실패에서 배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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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화영 교수

이민자가 전체 인구의 8%가 넘는 프랑스는 오래전부터 다문화 사회를 이뤄온 나라다. 그런 프랑스에선 다문화 사회의 불협화음을 알리는 사건들이 거의 매년 불거져 나오고 있다. 2004년 공공장소에서 이슬람 여성들의 머리 스카프인 ‘히잡’의 착용을 금지한 법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킨 이후 벌어지고 있는 논쟁이나 2005년 이민자들에 의한 파리 소요 사태 등은 다문화 사회의 갈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급기야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올해 초 다문화주의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는 발언을 해야 했다. 그러나 사르코지 대통령의 발언은 공동체 내의 불협화음을 인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프랑스의 정체성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책을 기저에 깔고 있었다. 그간 영국과 독일이 이민자의 문화적 정체성을 인정하는 정책을 취해왔다면 프랑스는 이민자가 프랑스 사회에 동화돼 살아갈 것을 요구하는 ‘동화주의(同化主義)’를 추구해 왔다.

 최근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IFRI)에서 이민과 시민권 센터를 맡고 있는 크리스토프 베르토시 박사를 만나 사르코지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베르토시 박사는 사르코지의 발언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1997년 프랑스 하원이 이민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키자 지식인과 시민 단체 회원 등 2만여 명이 파리 시내에서 법안 철회 요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프랑스 정체성의 위기를 말하면서 다문화 정책이 실패했다고 주장하는 건 난센스다. 프랑스에 사는 이민 2, 3세대들은 완벽한 프랑스 시민이다. 그들은 부모 세대와는 달리 문화적 정체성을 주장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이들이 프랑스 사회에 통합되어 있는가? 아니다. 이민자들과 소수 인종은 프랑스 사회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사회 불안과 경제적 위기가 이들 때문이라고 밀어붙이는 것도 이러한 차별의 하나다.”

 베르토시 박사는 프랑스 다문화정책 실패의 원인을 다음과 같은 한마디의 말로 요약했다. “프랑스의 다문화 정책은 정치적 위기에 대한 모면책으로 제시된 정치적 필요의 산물이었다.”

 낮은 출산율에 노동력은 부족했던 프랑스 사회에서 별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였던 이민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한 것은 1970년대 중반이었다. 70년대 이후 사회당은 이민자 정책에 호의적이었던 반면, 우파는 강경한 반이민 정책을 내놓았다.

 베르토시 박사는 프랑스가 배타성에서 벗어나 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정치적 계산에 이끌리지 않는 정책의 진정성을 가질 때 성공적인 다문화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소수자를 사회에 위험하고 도전적인 세력으로 끌고가서는 다문화 사회가 성공할 수 없다. 누구든 다문화 사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사회통합의 큰 틀 속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개인의 자유를 인정하는 공화(共和)주의를 내세우는 프랑스가 이민자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이들에 대해 차별을 보이는 것은 일관성 있는 공화주의가 아니라는 그의 비판은 타당해 보인다.

  한국 인구의 약 2.5%는 외국인·귀화자와 그들의 자녀들이다. 앞으로 다문화 정책은 점점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그러나 다문화 정책은 정치적 성향에 기반할 수밖에 없는 정부가 주도해선 안 된다. 진정성 있는 파트너십에 의거한 참여의 리더십이 필요함을 프랑스 사례가 보여주고 있다.

경희대 공공대학원 이화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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