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황당한 농협 전산 장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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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한애란
경제부문 기자

이 정도면 금융권 전산장애에 있어 진기록이라 할 수 있다. 농협중앙회가 2일과 3일, 연 이틀 전산장애를 겪었다. 그것도 똑같은 프로그램 오류로 말이다. 4월 농협이 사상 최장기간 전산마비 사태를 겪은 지 8개월 만이다.

 사고가 발생한 이유는 더 황당하다. 농협은 2일 0시42분 새로 깐 프로그램의 오류로 인터넷뱅킹·폰뱅킹·자동화기기(ATM)가 먹통이 되자, 3시간여에 걸쳐 이를 복구했다. 전날(1일) 버전의 프로그램으로 다시 되돌려 놓았다. 그런데 3일 0시30분이 되자, 문제를 일으켰던 새 프로그램이 또다시 작동했다. 전날 복구작업을 하면서 날짜가 바뀌면 1일자 버전이 2일자 새 프로그램으로 넘어가는 걸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이다. 이 때문에 25분간 인터넷뱅킹이 아예 먹통이 됐고, 이 시간에 접속한 고객 5981명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었다.

 농협 IT본부분사 관계자는 “한마디로 상황이 꼬였다”고 설명했다. 작업량이 워낙 많다 보니 복구하는 과정에 착오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런 하소연도 덧붙였다. “사실 (프로그램 오류는) 어느 금융회사나 다 발생합니다. 다만 4월 전산장애 사태로 농협에 대해 고객이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죠.”

 하지만 금융권에서조차 이런 해명은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한 은행의 정보기술(IT) 담당자는 “2일까지만 해도 농협을 옹호할 생각이었지만, 이틀 연속 똑같은 장애라니 그건 이해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단지 ‘재수가 없었다’고 보기엔 기본적인 내부 통제가 지나치게 안일했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도 같은 입장이다. 금감원 IT감독국 관계자는 “프로그램을 적용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할 사전 테스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5일부터 현장조사를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농협은 4월 12일 일부 거래 정보가 사라지면서 모든 금융거래가 마비되는 사상 초유의 전산장애를 겪었다. 당시 농협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5000억원을 들여 최고의 IT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이번에 보듯이 정작 문제는 돈과 시스템이 아닌 조직관리와 운용능력에 있었다. 내년 3월 사업구조 개편을 앞두고 농협은 정부에 6조원을 지원해달라고 매달리고 있다. 농협이 경쟁력 있는 금융지주사로 태어나기 위해선 자본금 확충 못지않게 허술한 내부 관리체계를 바로잡는 데도 신경 쓸 일이다.

한애란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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