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내년이 더 어려운 가계부채, 선제 관리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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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은행 적금과 보험 계약의 중도해지가 크게 늘고 있는 건 불길한 징조다. 우리은행의 경우 10월 중 중도 해지된 적금 계좌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5%나 늘었다. 신한은행의 월별 중도해지 계좌도 지난해 4만 건에서 10월 5만 건으로 증가했다. 게다가 2개월 이상 보험료를 내지 못해 보험계약 효력이 상실되거나 계약 해지된 건수도 급증했다. 적금과 보험 해지는 가계로선 사실상 마지막 수단이다. 돈이 아주 급할 때 사용하는 극약처방이다. 가계부채 대란(大亂)이 걱정되는 이유다. 실제로 대출 연체율도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하나은행의 경우 연체율이 지난해 4분기 0.29%에서 지난 3분기에는 0.45%로 급등했다.

 물론 지금 당장 큰일이 일어난다는 건 아니다. 정부 말처럼 가계부채는 아직 통제 가능한 수준에 있다. 부채의 상당 부분을 상환능력이 있는 중상위 소득계층이 갖고 있는 데다 대부분의 부채가 주택담보대출로 돼 있어서다. 정작 걱정되는 건 내년이다. 특히 내년 경제가 올해보다 나쁠 게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소득이 줄면 가계부채는 더 늘 것이고, 상환 능력이 줄어든다.

 가계부채는 고혈압과 같다.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가 충격이 오면 한꺼번에 터진다. 실제로 가계부채 압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가계부채가 지난해보다 무려 60조원이 더 늘어 연말에는 900조원이 넘을 게 확실하다. 금리도 오르면서 가계 이자부담 역시 사상 처음으로 50조원을 훌쩍 넘는, 56조원으로 추정된다. 이런 판에 내년 소득이 줄어든다면 상환능력이 문제 된다. 저소득층에서 시작된 문제가 중산층으로 번지면서 가계부채 위기가 시작될 수 있다. 미국 금융위기도 서브프라임, 즉 저소득층에게 빌려준 주택담보대출에서 시작됐다. 그렇다면 그나마 여유 있는 지금 선제적으로 가계부채를 관리해야 한다. 저축은행의 부실은 서둘러 털어내야 한다. 은행 대출보다 저소득층이 주로 의존하는 카드와 증권 등 제2금융권 대출부터 먼저 관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물론 가계가 스스로 알아서 부채를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내년은 상당히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이기에 하는 당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