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 닷컴 몰락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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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컴은 몰락할 것인가. 인터넷 혁명과 함께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던 닷컴 기업들의 앞날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닷컴들의 수익률이 예상외로 저조하자 러시를 이루던 투자자금도 뚝 끊기고 고공행진을 거듭하던 주가도 등락을 거듭하며 요동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파산선고를 받은 닷컴들도 속출하고 있다. 한계상황에 몰린 군소업체들은 자금여력이 있는 대형업체에 M&A되기 위해 구애작전을 펴기도 한다. 닷컴은 이대로 주저앉고 말 것인가. 아니면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강자만이 살아남을 것인가. 진퇴양난의 기로에 선 닷컴들의 현주소와 미래를 집중진단한다. <편집자주>

‘닷컴 기업들의 명복을 삼가 빕니다.’ 자금난에 허덕이다 결국 도산하는 닷컴들이 늘어나자 요즘 인터넷에는 이들 인터넷기업을 기리는(?)
‘온라인 무덤’까지 등장했다.

(http://www.upside.com/graveyard)에 접속하면 최근 도산한 인터넷 기업들의 ‘비석’이 줄지어 서 있다. 영국의 의류전문 온라인 판매업체 부닷컴(http://boo.com), 장난감 판매업체 토이스마트(http://toysmart.com), 각종 도구 판매업체 크래프트숍(http://cratfshop.com) 등 익히 언론에 오르내리던 유명 온라인 기업들에서부터 최근 유명을 달리한 비디오뉴스 공급업체 패스티비(FasTV.com)
, 축구팬커뮤니티사이트 라이브사커(http://LiveSoccer.com)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터넷 기업들이 이곳에 고이 잠들어 있다. 7월14일 현재 이곳에 올라 있는 도산 닷컴 수는 모두 25개.

파산기업의 비석에는 이들 기업의 간략한 일생 소개와 아울러 살아 있는 동안 탕진한 현금액까지 상세히 소개되어 있어 인터넷 기업들의 미래에 대한 경고 메시지가 되고 있다. 이들 기업 대부분은 98∼99년 창업해 급성장세를 유지하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결국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올해 초까지만 하더라도 손에 꼽을 정도였던 파산 닷컴의 수는 상반기를 지나며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 완전히 파산한 것은 아니지만 머지않아 ‘북망산’을 구경하게 될 닷컴들도 사이트 한쪽에 소개되어 있다. 의료기구 판매 및 의료정보 포털 닥터쿠프(http://DrKoop.com), 범죄뉴스전문사이트 에이피비뉴스(http://APBnews.com) 등이 ‘중환자실’ 명단에 올라 있다.

닷컴페일려스(http://www.dotcomfailures.com)라는 사이트 역시 이름 그대로 ‘닷컴의 실패자’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이 사이트에서는 도산기업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물론 현재 떠돌고 있는 도산 임박 기업들에 대한 루머들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또한 비즈니스모델·기술력·제품 및 서비스의 질·광고·경영능력 등을 지표로 파산기업들에 대한 ‘체력평??沮?함께 제공하며 인터넷 기업들의 미래에 ‘빨간불’이 켜졌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처럼 도산 닷컴에 대한 정보 서비스 사이트가 오히려 ‘돈이 될’정도로 닷컴들은 시련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파산한 인터넷 기업들의 정보를 모아둔 사이트도 등장했다.
한때 인터넷 기업들의 모델로 주목받던 아마존. 인터넷 서점에서 출발해 패션·가구·화장품까지 다루는 슈퍼스토어가 된 아마존은 최근 인터넷 전문 애널리스트의 보고서 한 장에 주가가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말았다. 95년 창업한 이래 지난해까지 29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아마존은 최근 2억 달러 이상의 적자와 70% 이상의 주가하락에 시달리면서 인터넷 산업 전반에 대한 회의론을 주도해 왔다. 미국 투자자문회사 리먼브러더스와 가트너 그룹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도 끔찍하다.

“아시아와 유럽의 유망 온라인 기업들 중 85%가 3년 내에 문을 닫을 것이다”

투자전문회사 메릴린치 역시 “사업계획과 수익구조를 확실히 갖추고 1년에 2천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회사만이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우리 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다음·한컴·새롬 등 인터넷 3인방의 주가가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고 이는 벤처기업 전반에 대한 투자자들의 외면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 돈없는 벤처는 떠나라

이처럼 닷컴들이 된서리를 맞고 있는 것은 수익률이 예상외로 저조했기 때문. 아마존의 경우 95년 이후 모두 12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는데 이중 절반 이상이 지난 반년 사이에 발생했다. 아마존의 운명을 신랄한 어조로 비판한 리먼브러더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아마존의 경우 물건을 판매할 때마다 손실을 보았으며 98∼99년 아마존의 매출은 1백70% 증가한 반면 재고는 6백50%나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동안 아마존의 미래에 대해서는 애널리스트들의 의견이 낙관과 비관 사이에서 양분되어 오긴 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비관적인 쪽으로 대세가 기울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수익률이 저조한 닷컴들이 초기 시장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회원확보·광고·마케팅 비용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집어 넣었고, 날로 경쟁이 격화되는 마당에 그 금액의 효과는 제대로 나지 않고 있는 실정.

결국 투자자들은 차츰 이들을 떠나기 시작했고 현금이 고갈되는 닷컴들은 기업으로서의 영속성을 더 이상 보장받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국내 역시 똑같은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그간 국내의 인터넷기업들 사이에는 “사업계획서 한 장만 팔면 돈 번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닷컴에 대한 장밋빛 환상은 심했다.

소규모 인터넷쇼핑몰 C사를 운영하는 L사장은 “작년만 해도 창투사에 가서 IR(투자홍보)
몇 번만 하면 서로 돈을 주겠다고 아우성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대출을 받아야 할 지경”이라고 한탄했다. L사장은 결국 기술신용보증기금을 찾아가 급전이나마 변통하려 했지만 기술신용보증기금에서는 담보를 요구했고, 자산이라고 해봐야 시스템과 직원 몇 명밖에 없던 L사장은 결국 두손을 들고 말았다. 이같은 상황은 비단 C사만이 아니다.

추가적인 투자자금 모집(funding)
라운딩을 해 ‘실탄’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결국 도산의 길을 걷는 닷컴들이 속출할 것이란 것이 벤처기업가들과 벤처캐피털들의 전망이다. 한 벤처캐피털리스트는 “지난해 10월 전에 1차 펀딩을 하고 작년 말이나 올해 초에 2차 펀딩을 하지 못한 기업들의 경우 사람이 늘어나고 시스템 추가구입비 소요로 운영자금이 증가해 현금이 거의 바닥난 상태일 것”이라며 “추가적인 펀딩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결국 도산하는 기업이 줄이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겨울 한복판에 서 있는 닷컴

더구나 추가 펀딩 자체도 쉽지 않은 상태. 지난해와 올해 초 워낙 기업가치를 높게 책정해 자금을 유치한 상태라 그 이하로 펀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높은 배수의 프리미엄을 주고 들어온 기존 주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은 뻔하다.

이처럼 증자를 통한 자금 조달이 쉽지 않은데다 금융권을 통한 차입의 길도 간단치 않아 닷컴들은 사면초가(四面楚歌)
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결국 운영자금이 바닥나 막다른 골목에 몰린 닷컴들로서는 이제 두 가지 길밖에 없다. 일단 자금여력이 있는 회사와 M&A를 하는 것이다. 최소한 투자 원금의 손해는 안보려는 투자자들도 닷컴들로 하여금 적절한 파트너를 찾아 M&A하도록 종용하고 있다.

이 경우 최소한 기존 투자자들의 원금 정도는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스닥 등록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다음의 대안이다. 최근 코스닥 진입에 성공한 A기업의 경우 주식시장을 통해 1천억원 가량의 자금을 확보, 최소한의 ‘버티기’는 가능한 상태다. 이도저도 안 되는 기업들로서는 결국 스스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벤처캐피털들의 행태도 달라지고 있다. 아시아벤처·TG벤처·한국기술투자 등은 최근 투자한 회사들끼리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대표이사들간의 정기 모임을 주선하고 있다.

그간 창투사들은 투자시점에서 말로만 시너지를 외쳐 왔지 제대로 사후 관리를 안해 온 것이 사실. 반면 지금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추가적인 투자는 손을 뗀 지 오래지만 이미 투자한 기업들만이라도 지키자는 생각에서다. 투자기업 상호간의 기술력·마케팅력 보완 등을 통해 기업들간 상승효과를 모색하는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빨라지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 죽을 기업은 빨리 安樂死시켜야

의류전문 온라인 판매업체로 이름을 날리던 영국의 부닷컴. 지난해 11월 문을 연 이 회사는 고급 브랜드만으로 승부를 걸며 마케팅을 해 왔다. 하지만 지난 5월 부닷컴은 자금난에 허덕이다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창업자인 카샤린더가 “부닷컴은 쇼핑하는 방식에 일대 변혁을 가져올 것이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제안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그의 자신감은 오래 가지 못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오히려 부닷컴이 창업 후 6개월 만에 간판을 내린 사실에 주목한다. 자금여력이 부족하고 수익이 제대로 나지 않자 신속하게 ‘손을 털’것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벤처컨설팅사인 벤처포트의 배운철 실장은 “신속한 의사결정을 통해 다소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빨리 정리하는 것은 그만큼 투자자들의 의식이 우리에 비해 성숙되어 있다는 증거”라며 “쓰러질 회사를 그럴듯하게 포장해 미적거릴 경우 그 피해는 개미투자자 등 엉뚱한 사람들이 뒤집어 쓰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사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완전히 망했다는 닷컴은 없는 상태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땀흘리며 기술개발에만 몰두하는 회사들도 있다.

“최근 상황이 옥석을 가리는 시기라지만 이러다 옥까지 다 죽이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한 벤처기업가의 이같은 솔직한 토로는 아직 성숙기에 접어들지 못한 우리 투자문화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닷컴주 썰물’을 계기로 단기적인 투자수익률에만 집착한 벤처투자자들뿐만 아니라 닷컴들 스스로도 수익모델을 점검하고 내실을 다지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데는 투자자나 기업가나 모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승렬 기자 <s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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