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민간지원수용·NGO관계설정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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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역기구(WTO)가 민간의 재정지원 수용여부와 비정부기구(NGO)의 참여문제 등 외부와 미묘한 관계설정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고민이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세계경제질서의 규범과 준칙을 제정하는 `독보적'인 위상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그 향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WTO의 키스 로크웰 대변인은 17일 일반이사회 회의결과를 설명하는 가운데 예산. 재정.행정위원회의 보고내용을 전하면서 슬그머니 돈문제를 끄집어냈다.

그는 유엔아동기금(UNICEF)과 달리 WTO는 외부의 기여금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고 전제하면서 이집트의 강력한 이의제기로 민간지원 수용여부에 관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는 기자들의 질문이 잇따르자 "빌 게이츠 재단이 개도국 빈곤퇴치를 위한 기금을 내놓겠다고 하는 등 일부 재단과 몇몇 기업의 제의가 있었다"고 실토했으나 곧바로 "민간분야의 현금기여에 대해서는 심각한 우려가 있다"고 토를 달았다.

그는 그러면서도 "민간기업이 최빈개도국들을 위해 컴퓨터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WTO에 지원하겠다고 할 경우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로크웰 대변인이 전한 WTO의 고민이 단순히 재정적인 차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뒤이어 이날 일반이사회에서 논의된 이른바 `외부 투명성' 확보문제를 놓고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 열띤 공방이 벌어지면서 그 실체가 확연히 드러났다.

`외부 투명성'이란 WTO가 유엔 등 다른 국제기구와 마찬가지로 NGO에 대해서도 문호를 개방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주로 이들 민간단체로부터 압력과 로비에 시달리고 있는 선진국들에 의해 주창되고 있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캐나다 등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NGO의 참여를 일정부분 허용하자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개도국들은 정부간 국제기구라는 WTO의 위상이 변질되고 이익의 충돌이 빚어질 수도 있다는 반론으로 맞섰다.

특히 환경과 노동 관련 NGO들이 WTO의 `비민주적 폐쇄성'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 개도국들은 협상 권한이 없는 NGO가 WTO에 참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해당국 정부를 상대로 의견을 개진하고 그 정부가 이를 WTO에 전달하는 것이 순리라고 반박하고 있다.

또한 민간의 재정지원 문제에 대해서도 "통상의 룰을 정하는 WTO가 이 룰의 적용을 받는 당사자들의 지원을 받아서야 되겠느냐"는 대응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양측의 팽팽한 신경전은 실질적인 이해가 얽혀있는 분쟁해결기구(DSB)내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비록 DSB의 경우 미국과 여타 선진국의 시각이 엇갈리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NGO를 비롯한 이익단체의 참여여부와 직결돼있다는 점에서 논쟁의 핵심에는 별차이가없다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처럼 WTO의 위상과 연관된 논란의 이면에는 WTO내의 주도권 선점과 자국 이익보호를 겨냥한 치열한 각축전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고민'으로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제네바=연합뉴스) 오재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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