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성 고민 털어놓을 장치, 우리사회에 너무 부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4면

대한성학회 박남철 회장이 건강한 성(性)에 대해 말하고 있다.

“행복한 삶을 위해 건강한 성(性)을 알리겠다.” 지난 20일 대한성학회 5대 회장에 취임한 박남철(55) 부산대병원장(비뇨기과). 취임 소감은 짧지만 국내 성 문제와 인식을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박남철 회장은 “건강한 성은 절제된 성”이라며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성문제는 성을 절제하지 못해 발생한다”고 말했다.

 국내에는 불법 성매매·성폭력·임신중절·동성연애·장애인의 성 등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 박 회장은 2년 임기 동안 성문제 예방과 성 인식 제고에 힘쓸 계획이다. 특히 성문제가 터진 후 봉합하는 사후약방문식 대처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대한성학회는 이미 이를 위한 시스템을 가동했다. 박 회장은 “성 교육자·상담자·치료 전문가 등 세 분야의 인증제도를 시작해 올해 28명의 전문가를 배출했다”며 “학교·단체 등 사회 각계에서 성에 대한 지식을 알리고 인식을 전환하는 활동을 펼친다”고 설명했다.

 대한성학회 1200여 명 회원의 전문 분야는 다양하다. 비뇨기과 의사·산부인과 의사·심리학자·사회복지사·간호사·성 교육자·양호교사·체육교사·문학가·예술가·법률가·철학자….

 -회원의 활동 분야가 사회 전체를 아우른다.

 “성을 의학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반쪽짜리 접근이다. 성문제는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시각이 보태져야 근본적인 대책이 나오고 건강한 성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

 -전문가들의 성에 대한 논의는 활발한 것 같다. 국민의 인식은 어떤가.

 “우리나라 역사에서 훌륭한 성학 스승을 찾기 힘들다. 오늘날 왜곡된 성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내가 의대에 다닐 때도 비뇨기과 교과서에 성의학에 대한 내용이 없었다. 남성이 발기가 안 된다고 하면 정신과로 보냈다. 최근에는 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고 의견 표출도 자유롭다. 동성애 커밍아웃만 봐도 그렇다. 성 정보에 대한 수용성도 높다. 논의의 장만 마련되면 성문제를 슬기롭게 풀 수 있다.”

 박 회장은 고령사회에 접어든 국내에서 노인의 성문제가 부각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인간은 남성호르몬이 뚝 떨어지고, 폐경이 와도 섹스를 하는 유일한 동물”이라며 “현재 고령자는 성교육을 받을 기회가 부족했다. 매독·임질 등 성 전파성 질환의 위험이 높다”고 경고했다.

 박 회장은 노인의 성과 관련 유통기업에도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발기부전 치료제의 개발로 남성 고령자의 성에 대한 욕구가 높아졌다. 하지만 여성 고령자의 신체는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마트의 계산대 옆에서 껌만 팔게 아니라 미국처럼 성생활을 위한 윤활제도 비치하면 좋겠다.”

 박 회장은 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활발해지는데 정작 개인이 성 고민을 털어 놓을 장치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세계 성인의 성 인식을 조사한 연구 결과가 있다. 대한민국 성인의 98%가 성생활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성문제가 있을 때 전문가를 찾은 비율은 2%에 그쳤다. 정책적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다.” 

황운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