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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드나든 의문의 2820호 “내가 칸 낙마시켰다”는 그룹 2인자 …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뉴욕의 한 고급 호텔 VIP룸에 여종업원이 들어오면서 드라마는 시작됐다. 그리고 경찰이 VIP를 체포하기 위해 출동했을 때,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들이 호텔 안전관리실 인근에서 그 VIP의 체포를 축하하며 ‘하이 파이브(손바닥끼리 마주치는 것)’를 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Dominique Strauss-Kahn·62)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이야기다.
지난 5월 14일 뉴욕에서 벌어졌던 IMF 총재 스트로스칸의 호텔 여직원 성폭행 사건은 단숨에 전 세계 최고의 톱뉴스가 됐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에 맞설 사회당의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였던 그는 단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한 의문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뭔가 음모가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그가 묵었던 호텔이 프랑스인 소유라는 사실도 알려졌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는 26일 1면 머리기사와 7면 전면을 할애해 그동안 제기됐던 스트로스칸 미스터리를 추적했다. FT의 기자들과 미국의 추적 전문기자들이 합동취재한 내용이다.
결론은 “뭔가 석연치 않고, 풀리지 않는 대목이 있다”는 것이다. 스트로스칸의 추락뒤에 음모가 있을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것이다. 그렇다면 음모를 꾸민건 누군가. 음모의 증거는 또 뭔가. 성폭행 의혹에서부터 체포까지, 5월 14일 뉴욕에서 벌어졌던 숨가쁜 순간을 FT의 추적보도를 토대로 재구성했다.

5월 14일 아침 뉴욕 소피텔 호텔 2806호 VIP룸에서 잠을 깬 스트로스칸은 프랑스 집권당인 대중운동연합(UMP) 파리사무실에서 임시 연구원으로 일하는 친구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당신이 블랙베리 휴대전화로 부인에게 보낸 e-메일 중 적어도 1개가 UMP 사무실에서 읽혀졌다”는 거였다. 스트로스칸은 외무부에 있는 친구로부터도 정적(政敵)들이 그를 스캔들로 흔들려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오전 10시7분 스트로스칸은 파리의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블랙베리가 해킹되는지 알아볼 전문가를 찾아보라고 했다.
그는 12시가 못돼 여행 가방을 싸고 샤워를 했다. 카드식 호텔방 열쇠 사용기록에 따르면, 여종업원 나피사투 디알로(32)는 스트로스칸의 방에 낮 12시6분에서 7분 사이에 들어갔다. 칸은 12시13분에 약 40초 동안 자신의 딸 카미유(26)와 통화했다. 그러니까 그 사이 6~7분 동안 스트로스칸과 디알로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가 핵심이다. DNA 분석 결과 VIP룸 침실 바깥에서 스트로스칸의 정액과 섞여 있는 디알로의 타액이 검출됐다. 스트로스칸의 변호인도 성행위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합의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트로스칸은 딸과 통화한 뒤 방을 나와 호텔을 떠났다. 호텔 감시카메라에 따르면 낮 12시28분이다. 스트로스칸은 남자친구를 데려온 딸 카미유와 만나 12시54분부터 1시간 정도 식사를 했고 오후 2시15분에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그 택시 안에서 스트로스칸은 블랙베리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거기엔 ‘해킹을 주의하라’는 친구의 문자메시지도 담겨 있었다. 스트로스칸은 여분의 휴대전화로 카미유에게 전화를 걸어 식당에 블랙베리를 두고 왔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다. 얼마 뒤 딸은 “찾지 못했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블랙베리 회사의 조회 결과 스트로스칸이 잃어버린 이 휴대전화는 12시51분에 전화기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신호가 꺼졌다. 이 휴대전화를 획득한 누군가 일부러 그렇게 했다는 뜻이다. 누가, 왜 그렇게 했을까.

호텔에서는 여종업원 디알로가 보안요원에게 자신이 스트로스칸에게 성폭행당했다고 말했다. 서아프리카 기니 출신 이민자인 디알로는 3년째 이 호텔에서 근무 중이었다.
하지만 디알로는 스트로스칸의 방에서 나온 뒤 바로 신고를 한 게 아니라 계속 VIP룸이 있는 28층에 머물렀다. 12시26분 디알로는 같은 층에 있는 2820호에 들어간다. 디알로는 이날 아침 여러 차례 이 방을 드나들었다. 디알로는 이 방에서 나온 뒤 다시 스트로스칸의 방으로 들어갔다. 성폭행 사실을 보고받은 객실관리 책임자인 레나타 마르코자니는 디알로와 함께 12시42분 스트로스칸의 방에 들어가 호텔안전요원과 경영진에 성폭행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잠시 뒤 호텔 1층 안전관리실에 여러 사람이 모였다. 피해자 디알로와 마르코자니, 호텔 안전팀과 보안국장 존 쉬한이다. 소피텔 호텔을 보유한 프랑스 그룹 아코르(Accor)의 보안국장인 쉬한은 집에 있다가 오후 1시3분 호텔로부터 전화를 받고 현장에 왔다. 그는 오는 동안 아코르그룹 보안 총책임자인 르네 조르주 퀘리와 통화했다. 퀘리는 이날 사르코지 대통령이 앉기로 예정된 파리의 축구경기장 특별석에서 경기를 관람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퀘리는 그때부터 대략 4시간 후 스트로스칸이 구치소에 수감될 때까지는 소피텔 호텔 사건에 대해 아무런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자비에 그라프는 아코르그룹 2인자로 그날 호텔에서 발생한 모든 비상상황에 대한 책임자다. 그라프의 이름은 사건 발생 5주 만에 세상에 공개됐다. 그가 자신의 친구에게 “내가 스트로스칸을 낙마시킨 주인공”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 내용이 르피가로지에 폭로되자 그라프는 농담이라고 주장했다. 그라프도 사건 당일 저녁까지 어떤 전화나 메시지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그러한 보고가 들어오지 않은 것은 “믿기 어려운 실수”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왜 춤을 췄을까

또 다른 의혹이 있다. 호텔 감시카메라를 보면 피해자 디알로는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와 함께 있었다. 그런데 호텔 측이 성폭행 피해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고 난 뒤 이상한 장면이 호텔 카메라에 잡혔다. 호텔 엔지니어인 브라이언 이어우드가 디알로와 함께 있던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와 함께 걸어가다 보안 사무실 옆 공간에서 서로 손바닥을 마주치며 박수를 치는 모습이 잡힌 것이다. 이 두 사람은 무려 3분 가까이 그곳에서 춤까지 추며 기뻐했다. 도대체 이들은 무엇을, 왜 기뻐한 것일까.
뉴욕 검찰은 스트로스칸을 기소했다가 곧 철회했다. 검찰이 디알로가 거짓 진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법원은 디알로가 성폭행 의혹 사건이 난 후 자신의 행적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스트로스칸의 호텔방을 나온 뒤 복도 구석에 숨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거짓말이었다. 디알로가 스트로스칸의 방에서 나온 직후인 12시26분 같은 층에 있는 2820호에 들어갔다는 카드 열쇠 기록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 기록에 따르면 디알로는 스트로스칸과 만나기 전에도 2820호에 들어갔고, 그때 그 방 손님은 체크아웃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디알로는 그가 왜 2820호에 들어간 사실을 숨겼는지 검찰에 설명하지 못했다. 스트로스칸의 변호사가 2820호 손님이 누구인지 알려고 시도했지만 소피텔 호텔은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거부했다.

블랙베리 속에 묻힌 비밀
게다가 소피텔 호텔 전자키 기록 점검 결과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이 12시5분과 6분 사이에 스트로스칸의 방에 들어간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스트로스칸은 샤워 중이었다. 방에 들어간 두 사람은 각각 다른 카드키를 사용했다. 12시6분에 사용된 카드키는 디알로의 것이었다. 12시5분에 사용된 또 다른 카드는 룸서비스 직원인 사이드 헤이크의 것이었다. 그는 아침식사 접시를 가져가기 위해 들렀다고 진술했다. 카드키가 밖으로 나간 시간은 기록하지 않기 때문에 디알로가 스트로스칸과 맞닥뜨린 그 시간에 두 사람이 동시에 방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스트로스칸의 블랙베리 휴대전화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경찰 수사에도 불구하고 전화기는 찾지 못했다. 최근 추가로 알려진 사실이 하나 있다. 스트로스칸의 블랙베리 폰은 소피텔 호텔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누가 가져갔고 왜 그 전화기를 먹통으로 만들어버렸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디알로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보고한 뒤 호텔 측은 한 시간가량 신고를 지연했다. 상식적이라면 보안요원들은 곧바로 디알로에 대한 검진을 요청했어야 한다. 호텔 보안담당 국장 존 쉬한의 메시지를 받고 나서 몇 분 뒤인 오후 1시31분까지 보안요원들은 911에 전화를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디알로는 사건이 발생한 후 거의 4시간이 지난 3시57분이 돼서야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았다.

많은 상황이 여전히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스트로스칸은 더 이상 내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사르코지의 도전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박경덕 기자 polee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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