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한’ 한국인을 가르쳐야 한다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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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호 31면

지난 5월 한ㆍ미 핵 전문가들이 소수정예 토론을 위해 서울 시내 어떤 대학에 모인 자리. 한 미국인 전문가 A가 유독 튀었다.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식견이나 성실한 태도로 시선을 끌었으면 좋았겠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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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참석자가 열변을 토하는 중 쩍하니 하품을 하고 지루하다는 듯 대놓고 먼 산을 쳐다보는 통에 다른 참석자들이 민망할 정도였다고 한다. 내로라하는 미국 싱크탱크 소속 연구원인 A는 급기야 옆자리 미국인 동료에게 쪽지를 써서 건넸다. 그 내용을 숨기려는 최소한의 성의조차 보이지 않은 탓에 일부 참석자도 쪽지를 엿볼 수 있었는데 내용은 이랬다. “한국 전문가들, 역시 멍청해(clueless).” 당시 현장에 있던 복수의 참석자가 증언한 내용이다.

백번 양보해 ‘clueless’를 달리 해석해볼까 해도 두산동아 영한사전에 나온 뜻은 딱 두 개다. ‘아주 멍청한’ 혹은 ‘…을 할 줄 모르는’. 어느 쪽이든 듣는 이에겐 달갑지 않다. 당시 회의에는 한국 쪽에서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이 참석했었다. 이날의 토론 주제는 ‘핵안보’였지만 한국 전문가들인지라 자연스레 북한 핵 위협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는데, 이를 문제의 A가 ‘핵안보에 대한 몰이해’로 치부했다는 거다.

A 연구원의 헛소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고 한다. 미국에서 ‘한국통’으로 자처하는 그의 단골 대사 중 하나가 “우린 한국인들을 가르쳐야 한다(We have to educate Koreans)”는 것. 가끔은 “한국은 우리(미국인)들이 아는 방식의 민주주의가 아니다(Korea is not a democracy of the way we know democracy)”라고도 한다는 게 워싱턴DC 학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물론 A연구원 한 명이 미국 싱크탱크 관계자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 A는 사실 스스로 무덤을 파는 하수(下手)에다 요란하기만 한 빈 수레에 가깝다.
핵심은 이 요란한 빈 수레를 ‘미국인 전문가’로 알아서 모시고 있는 국내 일부의 현실이다. 미국의 한 학계 관계자는 “한국인들은 굳이 항상 미국인 전문가들을 초청해야 구색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굳이 미국인 전문가들이 필요하지 않은 포럼이나 세미나에도 미국인 연구원을 끌어들여야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이런 인식을 위의 A와 같은 인물이 악용한다는 점이다. 외국인 앞에서만큼은 동방예의지국이어야 한다는 강박까지 합쳐져 한국이 때론 봉처럼 인식되는 상황이 연출된다는 우려도 있다.

이젠 미국 현지 전문가들의 옥석도 가릴 때가 됐다. 무조건 미국인 전문가라고 해서 주눅들지 않았으면 한다. 동시통역이 제공되는 포럼에서도 불편함을 참아가면서까지 영어로 얘기하는 한국인을 종종 본다. 하지만 버터 발음으로 날씨 얘기하는 것보단 김치 발음으로 핵심 이슈를 토론하는 게 더 알짜다.

적어도 A와 같은 이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국을 폄하하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건 피해야 한다. 굳이 돈 들여 봉 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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