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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의 40% 자영업이 흔들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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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경기침체가 서울 이화여대 앞 상권까지 덮쳤다. 24일 이대 앞 ‘보세골목’의 폐업한 점포 셔터에 찢어진 임대 문의 안내가 붙어 있다. [사진=김태성 기자]

24일 오후 서울 이화여대 앞 속칭 ‘보세골목’(이화여대 5길). 양편에 늘어선 100여 의류·액세서리 점포 중 15곳의 셔터가 내려져 있다. 셔터에는 ‘임대문의’란 글귀와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만 찬바람에 펄럭였다. 대로변에서 좀 떨어진 쪽은 서너 집 건너 하나꼴로 문을 닫았다. 인근 상인들은 “하나같이 최근 들어 경기가 나빠지면서 장사가 안돼 털고 나간 곳들”이라고 전했다. 이달 중순 이 골목에 49.5㎡(15평) 규모의 카페 ‘일 노브’를 차린 한재철(36)씨는 “하루 20잔을 팔면 많이 파는 것”이라며 “소문난 상권인 이대앞마저 이럴 정도로 경기가 나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이 심각한 경기 한파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위기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꽁꽁 닫은 탓이다. 1955~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들이 퇴직해 자영업에 뛰어들며 경쟁이 격해진 이유도 있다.

‘점심값 1만원 시대’로 불릴 만큼 밥값을 올렸을 때가 불과 올여름이었는데, 지금 식당들은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밥값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식당에는 손님이 없다. 한국음식업중앙회 박영수 상임부회장은 “1997~98년 외환위기와 2003~2004년 신용카드 대란 때나 식당들이 음식 값을 내렸을 뿐, 2008년 금융위기 때도 그러지 않았다”며 “현 상황은 금융위기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심상치 않다”고 우려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폐업자 수는 2008년 상반기 때 7만3000명이었다가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엔 24만1000명으로 급증했다. 올 상반기의 경우 7만7000명이 폐업한 상태. 현 분위기 여파로 내년 상반기에는 최소한 2009년 상반기 때 이상일 거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올 10월 현재 자영업자 수는 573만1000명.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자영업자는 소속 근로자들을 포함해 국내 고용의 40%나 차지한다. 그 때문에 자영업계가 흔들리면 우리 경제에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서울 남대문시장의 한 식당은 이달 초 6000원 이상 모든 식사 메뉴를 1000원씩 내렸다. 주인 전영민(44)씨는 “주 고객이던 시장 상인들이 도시락을 갖고 다니게 되면서 매출이 줄어 어쩔 수 없이 값을 떨어뜨렸는데도 손님이 좀체 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곳 시장에서 1평짜리 찻집을 운영하는 최인선(가명·55)씨는 “한 잔에 700원짜리 종이컵 커피마저 안 팔린다”고 하소연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남대문시장에서 인테리어 소품을 팔아 온 이선실(가명·46)씨는 최근 권리금 8000만원을 날리고 운영하던 가게 중 한 곳을 정리했다. 이익을 내기는커녕 매출이 월 임대료만큼도 안 될 정도였다. 쌓이는 적자를 견디다 못해 권리금을 포기했다. 남편과 함께 가게를 운영하며 대학 1년, 고1 두 자녀를 키우는 그는 “요즘 매상이 지난해 이맘때의 30% 수준이다. 하나 남은 가게도 적자지만 접고 나가봐야 딱히 할 게 없어 어떻게든 버텨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 김복순 책임연구원은 “외환위기와 신용카드 대란 당시 영세자영업자들이 제일 먼저 무너졌다”며 “경기 하강이 이어지더라도 이들이 일자리를 잃지 않도록 정부가 시급히 예방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연구원에 따르면 근로자 5인 미만인 영세자영업자의 56%가 50대다. 취업난이 심각한 요즘, 50대는 아직도 가계를 이끌어야 할 연령대다. 경기 때문에 이들이 무너지면 가계 전체가 몰락한다는 얘기다. 삼성경제연구소 손민중 수석연구원은 “퇴직하는 베이비붐 세대들이 음식점·부동산중개업·소매업 같은 레드오션에 몰리지 않고 다양한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유도하고 교육·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주·심서현·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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