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수민식 ‘공감 개콘’ … 여자들이 돌아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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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개그콘서트’ 돌풍의 주역들. 왼쪽 윗줄부터 시계방향으로 개그맨 김준호, 서수민 PD, 개그맨 황현희·박성호·최효종·김재욱. [최승식 기자]

오늘 일반 사무실이나 식당에서 흔히 목격되는 풍경 하나. 잠깐 옆자리에 귀를 기울이면 들린다. “이번 주 애정남 봤어?” “안 돼~안 된다니까~”

 KBS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인기가 예사롭지 않다. 답답한 현실에 웃음폭탄을 날린다. 풍자와 익살로 무장한 코너 코너가 경쟁하듯 화제다. 개그맨 최효종이 강용석 국회의원에게 고소당하는 황당한 일까지 일어났다. ‘사마귀 유치원’ 코너에서 “선거 유세 때 평소에 잘 안 가던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할머니들과 악수만 해주면 된다”고 해서다. 이름하여 ‘국회의원 집단 모욕죄’다. 서수민 PD는 "봐주셔서 감사하다. 오히려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고 여유있게 받아넘겼다.

 높은 인기는 어쩌면 이 ‘죄’ 때문인지도 모른다. 강력해진 사회풍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공감 개그로 두 달째 시청률 20%를 넘기고 있다. 과거 10%대를 유지해왔던 것에 비하면 급격한 상승세다. 인기의 중심에는 서수민(39) PD가 있다. “밥 먹으러 갔을 때 옆자리에서 ‘개콘’ 얘기가 들리면 기분이 정말 좋다”는 그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
일상에서 누구나 부딪치는 사소한 문제의 해결점을 제시한다.

 ◆여성PD가 주는 깨알웃음=‘개콘’을 여성PD가 지휘하기는 처음이다. 덕분에 소소한 일상에서 건져낸 ‘깨알웃음’이 늘어났다는 분석이 많다. “1년 전 처음 맡을 때만 해도 사내에서 걱정이 많았어요. 100명 가까이 되는 개그맨을 통솔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코미디가 남성적인 장르라는 편견도 있었고요.”

 기우였다. 특히 ‘애정남’ ‘생활의 발견’ ‘불편한 진실’ 등 토크 코미디가 인기를 견인했다. 드라마를 보던 여성 시청자들이 ‘개콘’으로 채널을 돌렸다.

 “공감, 토크 코미디에 좀 더 초점을 맞췄어요. 유행어나 캐릭터에 집착하는 대신 상황 속에서 공감을 이끌어내는 거죠.”

 이별하는 두 남녀가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며 나누는 대화에서 웃음을 길어 올리는 ‘생활의 발견’이 좋은 예다. 특별한 유행어 없이 상황에 푹 빠져들게 해 ‘하이킥’의 김병욱 PD가 “시트콤 영역을 침범하지 마라”고 농담을 던졌을 정도란다.

비상대책위원회
일은 안 하고 핑계만 대는 관료주의를 비틀었다. “안 돼~”라는 유행어를 낳았다.

 ◆오래된 새로움=‘개콘’은 1999년 첫 방영 후 12년째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유사 프로그램이 반짝했다 스러져가는 동안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폭소를 터뜨리는 힘은 점점 약해졌다. 서 PD는 과감히 오래된 코너를 내리고 새 코너를 앉혔다. 재미있는 ‘봉숭아 학당’보다 재미없는 새 코너가 낫다고 판단해서다.

 “개점 12년 된 오래된 가게에 손님이 오려면 단골메뉴도 있어야 하지만 새로운 메뉴가 계속 추가돼야 하지 않겠어요.”

 그렇게 새로 앉힌 ‘애정남’ ‘비상대책위원회’ ‘사마귀 유치원’ 등은 효자 코너가 됐다. 특히 ‘비상대책위원회’와 ‘사마귀 유치원’은 그간 방송에서 주춤했던 사회풍자 코미디의 부활을 알렸다.

 “사람들이 너무 힘들게 살고 있으면서도 ‘유난 떨지 말자’며 참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이걸 보면서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하며 웃음이 터지는 거죠. 공분하면서.”

 신규 코너만 앞세우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가게를 찾는 이유는 그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오래된 메뉴가 있기 때문. ‘감수성’ 같은 콩트를 맨 마지막에 배치하는 이유다.

 “일부러 개그맨들에게 ‘콩트를 개발하라’고 요구해요. 코미디는 콩트에서 시작된 거거든요. 그게 우리 프로그램의 정체성이기도 하고.”

사마귀 유치원
실제로는 힘든 일을 두고 “어렵지 않다”며 정치·사회 현실을 풍자한 블랙코미디.

 ◆개그맨 몸값을 높여라=요즘 서 PD에게는 일반 기업체의 강연 요청도 밀려든다. ‘개콘’의 성공 비결을 기업현장에 접목해보려는 시도다. 이럴 때 그가 빼놓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은 두 가지다. ‘공채 시스템’과 ‘출퇴근 시스템’이다.

 “개그는 절대 혼자서 잘 될 수 없거든요. 같이 일상을 나누면서 아이디어를 함께 짜야 해요. 회사원처럼 매일 출퇴근해야 하죠.”

 하지만 매일 출근해도 그 주에 출연하지 못하면 출연료를 못 받는 상황도 생기기 마련. 서 PD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돈 되는 (외부) 일’을 허락한다. 고참 개그맨 김준호가 “PD님이 맡은 뒤로 생활이 윤택해졌다”고 농담을 던지는 이유다. “우리의 모토가 개그만 해도 먹고 살 수 있게 하자는 거거든요. 그래서 몸값을 올려주고 싶어요. 그게 내 임무이기도 하고.”

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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