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번째 편지 〈고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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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면 밤새 모래처럼 꿈이 쌓여 목욕탕에 갑니다. 얼마 전까지 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목욕탕에 가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아파트 욕실 샤워기로는 씻은 맛이 나지 않아 아침마다 목욕탕에 갔던 것입니다. 나를 두고 결벽증이 있다고 가까운 이들이 말합니다. 네, 어느 정도 그렇다는 걸 인정합니다.

그것 말고도 내게는 몇 가지의 버릇이 또 있습니다. 습관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우선 식습관인데 전에도 말했지만 오랫동안 나는 닭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입에 대지 않은 음식이 또 있었습니다. 돼지고기가 그것입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비계가 싫고 육질이 싫었던 것입니다. 소고기나 다른 고기도 그다지 좋아하질 않아서 입에 대는 경우가 아주 드물었습니다. 생선만은 예외였는데 특히 생선회는 지금도 아주 좋아합니다.

군대에 가지 전까지 나는 목욕탕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벌거벗은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기 싫었던 것입니다. 이런 버릇들은 군대에 가서야 대부분 고쳐졌습니다. 군대에서 음미하듯 혼자 목욕을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한겨울에 입대해 신병교육대에 가니 얼음이 언 바닥에 집단적으로 몰아넣고 물을 뿌려대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몸씻기가 버릇이 돼 있던 나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없이 세탁기 같은 그 집단 세척 방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버릇도 훈련병 시절에 간단하게 고쳐졌습니다.

어쩌다 식판에 부어주는 돼지고기국은 그야말로 기름만 몇 점 둥둥 떠다니는 정도였는데 배가 고파서 도무지 먹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닭고기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돼지기름 덩어리든 닭껍질이든 먹어두지 않으면 체력적으로 버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제대를 하자마자 나는 공주에 있는 깊은 암자로 들어가 꼬박 일 년을 지냈습니다. 그간의 갖은 정신적 감금에서 해방돼 다시 자유인으로 태어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선 몸과 마음을 맑게 하고 싶어 매일매일 목욕하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개울에 돌을 쌓아 둥근 욕탕을 만들고 밤마다 거기서 목욕 재계를 했습니다. 절에 들어간 것은 봄이었는데 겨울이 와서 눈보라가 치는 밤도 얼음을 깨고 몸을 씻어야만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스님에게서 목욕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더불어 몸을 맑게 하는 다른 법도 배웠습니다. 죽염과 녹차 요법이 그것입니다. 죽염은 대나무 통에 천일염을 넣어 황토가마에서 아홉 번을 구워냅니다. 한 가마를 구우면 자수정 같은 맑은 결정이 한 되쯤 나옵니다. 그걸 사이사이 먹습니다. 죽염은 몸 안에 있는 독을 씻어냅니다. 매실이 그렇고 녹차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이십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나는 죽염과 녹차와 목욕으로 몸을 길들이며 살아왔습니다. 녹차를 많이 마시면 성욕이 감퇴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 편이 낫습니다. 성욕인지 정욕 때문에 때없이 진저리를 치며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불능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스님들이 녹차와 죽염을 상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정신이 맑아지고 집중력이 생깁니다. 용맹정진하는데 정욕은 분명 상대하기 힘든 적입니다.

술을 마신 다음날은 새벽부터 목욕탕으로 달려갑니다. 마시긴 했으되 그 다음날까지 몸안에 알코올 기운이 남아 있는 게 싫은 것입니다. 결코 오래 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정갈한 편이간 하지만 타고난 체질 때문에 그리 건강한 편도 못됩니다. 다만 사는 동안만이라도 깨끗하게 지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유럽에는 목욕탕이 없습니다. 헝가리나 오스트리아의 온천지대를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듭니다. 베를린에 일본식으로 남녀가 함께 드나드는 공동 목욕탕이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작년에 독일에 들렀을 때도 차마 가보진 못했습니다. 어쨌든 유럽을 여행할 때는 목욕탕이 없어 매우 괴롭습니다. 대신 하루에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샤워를 합니다. 언젠가 나와 파리와 이탈리아를 동행한 여행자가 그러더군요.

"씻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이면 좀 아깝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다른 일에 좀 부지런하면 됩니다. 음식점에 가도 정갈하지 않으면 손에 대고 싶지 않습니다. 입맛이 없어 입술이 열리질 않습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생각에 곧 서글퍼집니다. 존재의 모욕이 느껴집니다.

안된 얘기지만 우리 나라 식당들은 대부분 위생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주방을 들여다보면 꼭 돼지우리 같습니다. 거기서 음식이 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매식을 할 때마다 호텔에 가서 먹을 수도 없습니다. 호텔 음식은 정갈하긴 하지만 맛이 없습니다. 드라이플라워를 화병에 꽂아놓고 김빠진 사이다를 마시고 있는 기분입니다. 살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 모릅니다.

그보다 내가 왜 이런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까다로워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남들이 나를 얼마나 불편하게 생각할까를 상상하면 곧 쓸쓸해집니다.

최근 들어 나는 이런 습관들이 혼자라는 의식에서 온 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혼자 있으면 누추하고 더러운 게 싫습니다. 밥은 대부분 사먹기 때문에 입맛도 갈수록 까다로워집니다. 집안도 아침저녁으로 청소를 해야 직정이 풀립니다. 어떤 때는 목욕하고 집안 청소하는데 하루가 다 갑니다. 제풀에 지쳐 급기야 아무 것도 못하고 방바닥에 드러누워 무력하게 천장만 올려다봅니다.

안 그래도 타인과 섞이지 못하는 성격인데 더불어 불특정다수인 그들과 끊임없이 차별화를 시도합니다. 그런 사소한 데서 자기 변명의 빌미와 근거를 찾으려고 합니다.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혼자 사는 일은 때로 많은 변명을 필요로 합니다. 역시 독신으로 녹차를 복용하며 살고 있는 부산 출신의 소장 인문학자 김영민 교수가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독신의 삶에 필요한 세 가지 미덕: 절제, 정비, 박해에 대한 예감."

그렇습니다. 혼자 살면 실로 많은 박해를 받게 됩니다. 숱한 오해와 수군거림에 진저리가 날 정도입니다. 사람들이 싫어지면서 점차 결벽증이 생깁니다. 그걸 이겨내지 못하거나 싫어서 결혼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근래 들어 나는 조금씩 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몸을 씻는 습관은 여전하지만 목욕탕에 가는 일은 일주일에 한번이나 두번으로 줄었습니다. 그때마다 누군가 내 몸에 들어와 귀를 잡고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혼자 너무 많은 물을 쓰고 사는 건 아녜요? 제가 계산해 보니 일년에 목욕비가 백만원이 훨씬 넘더군요.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한방울의 물이라도 아껴 써야 하는 게 아닌가요? 그 돈을 유니세프에 맡기면 배가 고파서 죽어가고 있는 아프리카 어린이 몇 명을 구할 수 있는지 알고 있나요? 깨끗한 건 좋지만 너무 깨끗한 건 오히려 비인간적인 게 아닌가요? 냄새가 없는 사람은 오감의 주체 하나를 잃고 사는 사람이 아닌가 말예요."

"당신은 타인이 과연 누구라고 생각하나요? 그것은 맑음뿐만 아니라 온갖 냄새와 누추함과 더러움과 성욕을 가진 존재이고 동시에 하루에 한끼 정도는 누구나 맛없는 밥을 먹고 사는 존재가 바로 타인입니다. 당신도 자신에 대해선 가까운 타인에 불과해요. 그런데 당신이 그 사람에게 하루도 쉬지 않고 목욕을 시키고 집안 대청소를 시키고 한끼 음식을 먹기 위해 그때마다 지푸린 얼굴로 식당을 전전하게 한다면 좋겠어요?"

당신을 만나고 나서 일종의 자기 암시가 생겼습니다. 무엇을 할 때마다 그 사람이 내 속으로 들어와 다분다분 이런 말을 건네는 것입니다. 내게 비로소 진정한 타인이 발생한 것입니다. 반가운 손님 말입니다.

나는 혼자 사는 삶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건 김영민 교수처럼 철저히 자기 감시를 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니면 아예 이렇게 명백히 절망하고 있어서 오히려 남달리 강해졌거나.

"내 생활의 불행은 나를 감당할 수 있는 친구가 없다는 사실."
"운명보다 한 발 앞서 만나고 운명보다 한발 앞서 떠날 나에게, 그러나 오늘 밤은 더디게 지난다."
"객사하더라도 품격이 있어야 한다."
"자살의 고요함, 달콤함이 수면처럼 다가오는 밤. 암살하지 못하면 자살이라도 하든지."
"신 앞에 신과 함께 신 없이 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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