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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BEST] 4060 다시 세상으로② 최효선 변리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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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0 다시 세상으로

육아와 내조, 그리고 살림에 ‘올인’하며 살아온 주부들. 마흔이 넘어서면서 삶의 고민이 커진다. 남편도, 자식도 옆에 있지만 내 존재를 대신 증명해 주진 않는다. 그렇다고 쇼핑으로, 모임으로 시간을 보내버리기엔 삶이 너무 길다. 그 고민에 대한 답을 늦깎이로 일을 찾아 ‘성공한 프로’로 자리잡은 여성들에게 들어본다. 새로운 길을 열망하는 ‘4060’에게 롤 모델이 될 여성들이다.

1989년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결혼해 가정으로 뛰어들었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간 뒤 다시 세상을 쳐다봤을 때 혼자만 성장을 멈춘 느낌이었다. 결혼 당시 의대 졸업반이었던 남편은 어느새 인턴·레지던트를 거쳐 전문의가 돼 있었고, 친구들은 학교와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공허한 기분이 들었다. 운동을 해도, 취미생활을 해도 그 허전함을 메울 수 없었다. 취업을 생각해 봤지만 고학력·고연령에 무경험인 그에게 열리는 문은 없었다. 그는 사회로 다시 나올 수 있는 티켓으로 변리사 자격증을 선택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고, 시험에 강했던 그에게 도전해 볼 만한 길이었다. 수험생활 5년. 2000년 변리사 시험에서 최고령으로 합격했다. 알파 걸에서 전업주부로, 다시 알파 우먼으로 변신한 최효선(48) 변리사를 만났다. 서울대 불문과 출신인 최 변리사는 현재 광개토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로 있으면서, 벤처기업 ‘광개토연구소’ 부사장 직도 맡고 있다.

글=문은영 객원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최효선 변리사의 이력서엔 10년이 빈다. 1989년 결혼한 뒤 10년을 전업주부로 살았다. 최 변리사는 그 10년을 두고 “열심히 일하고 싶다는 열망을 키운 시기”라고 말했다.

-전업주부를 선택했던 이유는.

“대학을 졸업한 뒤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하지만 외국 문학을 전공한다는 것에 대한 한계가 점점 크게 느껴졌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기분이랄까. 약간 지친 상태로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동기들이 박사과정 진학이나 유학길에 오를 때 결혼했고 바로 아이를 낳았다. 그때는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이 가정이었고 아이였다. 그렇다고 일에 대한 생각을 다 접은 것은 아니었다. ‘당분간’ 살림과 육아에 전념하겠다고 가족에게 이야기했다. 그 기간에 내가 택할 수 있는 직업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찾아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전업주부로서 안정된 삶에서 머무르고 싶지 않았나.

“편안하고 안정적인 생활이었지만 어느 날 돌아보니 내 이름으로 된 통장 하나 없이 살고 있었다. 나는 한 남자의 아내고, 한 집안의 며느리고, 부모님의 자식이었지만 나 자신이 누구인지 정의할 수 없었다. 나만의 것, 내것이 없었다. 남편과 친구들은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딸도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데 나만 뒤처지고 있었다. 놀이공원 자유이용권을 손에 쥐고도 해가 저물도록 회전목마만 계속 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신나게 롤러코스터를 탈 동안 난 그들의 짐을 맡아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꼴이었다. 짐을 라커에 넣고 나도 신나게 즐길 수 있는데 안전하지만 지루한 회전목마에서 내려오지 못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변리사 시험에 도전하게 된 이유는.

“늘 품에 끼고 살았던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고 나니 오전 시간이 비었다. 막연히 ‘아이 크면 해야지’ 하면서 오랫동안 미뤄뒀던 숙제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고 할까. 많이 고민한 끝에 학교를 그만뒀기 때문에 다시 진학할 생각은 없었다. 그 외에 다른 분야는 취업도 어려울뿐더러 성취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언론사나 출판사에 취직하기에도 이미 시기를 놓친 상태여서 자격증을 갖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시험 준비는 언제 시작했나.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합격할 때까지 5년 정도 걸렸다.”

-공부하기 힘들지 않았나.

“변리사라는 직업은 법률과 과학이론을 모두 공부해야 하는, 이른바 ‘크로스오버’ 직종이다. 시험과목 중 초반기에 제일 힘들었던 것은 자연과학 개론이었다. 고등학교 때 생물만 배웠기 때문에 다른 과목은 기초 단계부터 공부해야 했다. 집 앞 입시학원에서 고등학생이 듣는 과학탐구 겨울방학 특강을 함께 수강했다. 아줌마가 맨 앞자리에서 수업을 들으니 학원 강사들이 당황스러워했던 것이 기억난다.”

-시험 준비와 육아·살림을 병행하는 일이 어려웠을 텐데.

“원래 어렸을 때부터 시험기간이라고 해서 집에서 특별대접을 받았던 기억이 없다. 고3 여름방학에도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다녀올 정도였다. 그래서 변리사 시험을 준비한다고 일상생활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간식 챙기고 숙제 봐주고 장 보고 저녁식사 준비를 했다. 공부는 아이가 학교에 간 오전 시간과 잠든 후인 밤 시간에 했다. 자투리 시간이 잠시라도 생기면 모두 공부하는 데 썼다.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놓고 기다리는 차에서 문제집을 풀었고, 주말에는 학원에 다니면서 부족한 공부를 보충했다. 아무래도 일반 수험생들보다는 공부시간이 토막나기 때문에 공부할 때는 최대한 집중했다. 매일 순수하게 공부한 시간을 일정표에 기록해 전체 공부량을 측정했다.”

-엄마의 수험생 생활이 아이에겐 어떤 영향을 끼쳤나.

“초등학교 다니는 동안 시간만 나면 시험 공부를 하는 엄마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우리 딸은 어른들은 TV 보고 노는데 자기 혼자만 방에 들어가 공부해야 한다는 억울함이 없었던 것 같다. 아이가 외동이지만 어릴 때 늘 같이 있어주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성장하지 않았나 싶다. 내 공부 하느라 아이 따라다니며 시시콜콜 잔소리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아이랑 그다지 갈등이 없었다. 아이가 알아서 잘해주리라 믿으니까 그 믿음이 전해진 것 같다. 지금은 아이가 대학교 3학년인데 엄마가 전문 분야에서 일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일하면서 알게 되는 정보나 경험들을 자주 들려주기 때문에 아이의 시야를 넓혀주는 효과도 있다.”

-시험에 연거푸 떨어질 때 좌절감이 들지는 않았나.

“시험 초기에는 준비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떨어져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수험생활이 길어지고 나름 내공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도 근소한 점수 차이로 몇 번 시험에서 떨어지게 되니까 ‘내가 너무 과한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시험을 포기하고 지식재산권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먼저 합격한 친구가 실제로 변리사 업무를 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전해줬다. 한 번만 더 해보자며 다시 시험 준비를 했고, 마침내 변리사 시험 37기에 합격했다.”

-변리사 시험에 최고령으로 합격했다. 합격 이후 젊은 사람들과의 경쟁에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 같다.

“최고령으로 합격했다는 소식에 기쁨보다 민망함이 앞섰다. 하지만 ‘최고령’도 나름 명예로운 타이틀이었다. 수습기간 동안 동기 대표로 대외적으로 활동할 기회도 많았고 동기들에게도 확실하게 내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지금도 전업주부로 있다가 뒤늦게 시험에 합격했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놀라워한다. 그런 점도 나만의 브랜드 가치가 될 수 있었다. 전업주부 생활 10년을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쁘게 학교 다닐 때에 비해 시간에 쫓기지 않고 책을 읽고 많은 것을 생각하고 다양한 경험을 했으며 열심히 일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득 채웠다. 또 어린 나이에 합격한 동기 후배들이 뒤늦게 연애·결혼·출산·육아 문제로 힘들어하는 시간에 나는 오로지 일에만 열중할 수 있었다.”

-변리사라는 직업에 만족하지 않고 벤처기업까지 운영하는 이유는.

“대형 정기여객선의 일개 승무원으로 일하느냐, 아니면 작은 범선이지만 나만의 배를 타고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느냐 고민했고, 후자를 선택했다. 벤처회사에서는 전 세계 특허정보를 가공해 분석·평가하는 ‘PATENPIA’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기본적 특허 검색뿐 아니라 온라인 특허 맵 작성, 특허 자동평가, 분쟁 예측 프로그램 등 지식재산권을 통한 기술평가, 사업화, 자금유동화 등의 영역으로 확장하려고 한다.”

-시간을 쪼개 활용하는 노하우가 있나.

“전업주부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집안일과 요리가 손에 익었다. 짧은 시간에 집안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도움이 된다. 또 시험 공부할 때부터 시간을 쪼개 하던 습관이 있어서 대체로 순간 집중력을 발휘하는 편이다. 해야 할 일들 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하고 금방 끝낼 수 있는 것부터 업무 처리를 한다. 바쁘게 사는 것 같지만 그런 중에도 온갖 책을 읽고 친구들을 만나고 당일치기 여행을 간다. 적절히 쉼표, 마침표를 찍는 것이 오래 길게 일하는 방법이다.”

-변리사 시험을 꿈꾸는 주부들에게 조언한다면.

“수험생들의 면면을 보면 주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직장인도 있고 생계 유지를 위해 아르바이트하면서 공부하는 사람도 있다. 누구에게나 핸디캡이 있고 장애물이 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은 ‘~ 때문에’ 못한다고 하지 말고 ‘~임에도 불구하고’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혼자 공부하면 정보 수집에 불리할 수도 있으므로 학원 수강이나 스터디그룹 등을 적절히 활용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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