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부시맨 닥터’ 이재훈을 아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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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이태석상’ 수상자로 선정된 외과 전문의 이재훈씨가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섬에서 어린이 환자의 다친 발을 치료하고 있다. [외교통상부]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봉사활동을 하다 지난해 숨진 고(故) 이태석 신부를 기리는 ‘이태석상’ 첫 수상자로 외과 전문의 이재훈(44)씨가 선정됐다.

 고려대 의대를 졸업한 이씨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외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직후인 2000년 ‘인종 청소’로 악명 높았던 르완다를 찾았다. 이곳에서 한 달 간 봉사 활동을 한 그는 ‘아프리카에서 의료 봉사를 하려면 다양한 분야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브란스 병원으로 돌아간 그는 교수들의 양해를 구해 위장·간·대장·갑상선·소아외과 등 다양한 분야의 전임의 과정을 두루 거쳤다.

2003년 마다가스카르를 활동지로 정한 이씨는 이때부터 이 섬나라의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며 현지인을 돌보고 있다. 의료봉사 활동을 위해 매년 평균 이동 거리가 1만2000㎞에 이른다. 동료 봉사자들은 의료 시설 하나 없는 숲 속에서 수술하는 그를 보고 ‘부시맨 닥터’로 부른다고 한다.

 외교통상부는 이태석 신부의 봉사정신을 기리고 아프리카 봉사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 이미지 제고에 기여한 봉사자들을 격려하고자 올해 8월 이 상을 만들었다.

이태석 신부의 친형이자 심사위원 중 한 명인 이태영 신부가 이씨를 수상자로 강력히 추천했다.

 다음은 수상자 선정 후 이씨가 보내온 수기 요약.

 “어렸을 때, 아프리카에는 피부 빛이 검은 식인종이 있는 나라로 알고 있었다. 그 무렵부터 의사가 돼 이들을 돕고 싶다고 생각했다. 2000년 외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한 달 간 일한 르완다에서의 경험으로 다양한 환자와 질병을 다뤄야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다가스카르에선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것이 중요했다. 1년 간 언어를 배우는 데 전념했다. 친구를 만들었다. 이런 나의 모습에 부러움과 질시가 섞여 있던 그들의 눈빛이 변했고, 동료가 생겼다.

 이곳, 2만여 개의 마을에는 의사도 간호사도 약국도 없다. 주민들 가운데 질병이 발생하면 그 질병이 저주 때문에 생겼다고 믿고 무당을 찾아가는 것이 전부다. 현지 의료인들을 훈련시켜야겠다고 결심했다. 정부로부터 의료인을 훈련하며 진료할 수 있는 수도 타나 근처의 이또시 병원을 소개받았다. 이동 진료팀을 만들어 매월 1주일씩 무의촌 지역을 찾아 이동 진료를 시작했다.

 우리 팀이 갈 수 있는 마을은 1년에 10곳 남짓이다. 모든 무의촌을 가려면 200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동진료 의사 100명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다가스카르 현지인 의사 100명을 길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교육 프로그램과 교수들, 병원이 필요하다. 이 일을 함께할 동지가 필요하다. 정말 절실히 필요하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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