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인공수정 정액 희석제 국산화 성공한 벤처기업의 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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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화 성공한 토종기술 … 수입품과 힘겨운 싸움

고정문 대표(왼쪽)·손중호 대표가 국내 최초로 개발한 돼지 정액 희석제 ‘세미낙’ 제품 시약을 들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조영회 기자]

천안 지역 벤처기업이 수년간 연구 끝에 국산화에 성공하고도 거래처를 확보하지 못해 경영난을 겪고 있다. 외국제품에 비해 가격, 성능, 실용성 등 모든 면에서 우수성이 입증됐지만 오랜 기간 시장을 장악한 수입제품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충남테크노파크 입주 기업인 ㈜노아바이오텍·㈜나비바이오텍은 지난 2007년 중소기업청이 지원하는 ‘산-산 협력 BI공동기술개발사업’에 선정돼 2년간 공동 연구를 벌여 액상형태의 ‘돼지 인공수정용 정액 희석보존제’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해 왔던 외국산 제품을 대체할 수 있는 토종기술이어서 당시 양돈시장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현재 제품을 사용하는 곳은 인공수정센터 2곳, 소규모 양돈농가 5곳(연매출 4800여 만원)이 전부다. 국내 양돈 규모는 80만두(구제역 발생 전 100만두)로 추정된다. 농가에 제품을 공급하는 인공수정센터가 60여 곳에 이르고 60억원 규모의 인공수정용 정액 희석제 시장을 감안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생존율·활력·보존기간 외국산 비해 탁월

돼지 인공수정은 1950년대 후반 처음 이뤄졌다. 1980년대 인공수정 보급률이 17%에 불과했다가 지난해는 96% 이상으로 거의 모든 양돈농가가 인공수정으로 돼지번식을 하고 있다. 한 마리에서 채취한 정액을 여러 마리 암퇘지에 수정시킬 수 있어 우수 유전자 활용을 극대화 할 수 있다.

 특히 돼지는 생리학적 특성상 다른 포유동물과 달리 정액을 얼려(냉동) 사용하기 어렵다. 때문에 대부분 액상형태로 보존하면서 인공수정을 해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자 활력은 급속히 떨어지고 생존성도 저하된다. 아무리 우수한 종의 씨라도 3일을 넘기지 못한다. 하지만 채취된 정액을 빠른 시간 안에(30분~1시간 이내) 정액 희석보존제에 섞으면 최장 7일까지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다.

국내에서 사용되는 희석보존제는 전량 미국과 유럽 제품들이다. 하지만 ㈜노아바이오텍·㈜나비바이오텍이 국산화에 성공해 ‘세미낙(Seminark)’, ‘다산(Dasan)’ 제품을 생산, 출시했다. 특허 등록(제10-0903581호)과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제조 및 품목허가(제175-1호)도 받았다.

 외국제품들은 돼지정액을 장시간 보존 시 문제가 되는 정자의 지질대사를 효과적으로 억제하기 위해 고가의 용액을 사용한다. 이에 반해 국내제품은 식물에서 추출한 천연 항산화제를 사용, 가격을 크게 낮췄다. 실제 5~7일까지 보관할 수 있는 외국산의 경우 가격이 6500~7000원 정도지만 국내산은 절반인 3000~3500원이면 구입이 가능하다.

 또 외국산은 돼지정액을 5일 이상 17도 상에서 보존하기 위해 고가의 알부민(소 혈청 알부민, BSA)을 넣는데 국내산은 이를 사용하지 않아 혈청 알부민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질병 전파의 위험까지 차단하는 등 성능 면에서도 탁월한 효능을 인정받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요건은 보존 기간이다. 실험결과 국산제품은 3~7일 이상 정액을 보존할 수 있는 외국산과 비교해 정자의 활력과 생존율이 더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세계적으로 관심을 나타냈지만 개발에 실패했던 액상형태의 희석보존제라는 점은 국내 벤처기업이 올린 큰 성과다.

국내외에서 사용되는 모든 제품은 분말형태여서 용액이 완전히 녹을 때까지 섞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국내 홍보·수출 거래처 확보 절실

성능, 가격, 실용면에서 국내산(사진)이 외국산에 비해 손색이 없다. 하지만 양돈농가의 인식부족, 마케팅 능력부족, 수입 오퍼상들의 가격 내리기 등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 양돈농가에서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업을 관할하는 관련 기관들의 소극적인 행정이 이와 같은 우수 벤처기업의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열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청이 2007년 사업을 공모, 선정했고 2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지원했지만 개발 이후 수출 등 판로확보에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더욱이 국내 조달품목조차 등록되지 않아 판로개척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입주기업을 지원하는 충남테크노파크 역시 이들 기업의 국내 및 해외시장 개척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충남테크노파크 강석철 기업지원단장은 “기업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안에 대해 충남테크노파크 기업지원단에서 일부 지원하는 사업이 있지만 해당 기업이 사업을 어떻게 제안하느냐에 따라 전문위원들이 심사, 결정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라며 “그렇다고 애로사항이 있는 해당 기업만 단독으로 지원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노아바이오텍 손중호 대표는 “기존 외국제품을 국산화함으로써 기존의 수입제품을 대체해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데다 가격도 저렴하고 실험결과에서도 우리나라 제품의 우수성이 입증됐지만 여러 가지 요인으로 국내 시장을 파고들기에는 한계를 느끼고 있다”며 “매출이 적으니 금융권 대출도 어렵고 인력도 없어 해외시장 개척을 하고 싶어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한숨지었다.  

▶문의=노아바이오텍 041-622-6284, 나비바이오텍 041-523-8257

글=강태우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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