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민의 부자 탐구 ⑩ 부자의 취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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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되면 무엇이 좋을까? 이런 질문이 엉뚱하다면, 한번 자신이 부자가 되었다고 상상을 해보라. 흔히들 부자가 되면 원하는 것, 특히 여행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부자가 아니어도 이런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부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단지 돈이 있고 없음의 차이다. 생각보다 이 차이가 단순하지 않다.

『위대한 개츠비』라는 소설을 쓴 프랜시스 S 피츠제럴드는 “부유하다는 것은 은행에 돈이 많다는 것처럼 단순한 하나의 사실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이자 여러 가지 태도의 집합, 특정한 삶의 방식이다”고 나름 정의했다. 부자는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현실의 한국 부자는 정말 부자가 아닌 나와 다를까.

 부자가 된 후 어떤 점이 가장 좋을까. 부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포브스코리아 2007년) 결과 39%가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다’고 응답했다. 24%는 ‘자녀에게 부를 물려줄 수 있다’, 20%는 ‘남을 도울 수 있다’고 했다. 16%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답했다. 자신의 삶을 나름 즐기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한국인의 심리를 잘 보여준다. 사실 부자가 아니더라도 이런 삶을 누릴 수 있다.

 자녀에게 부를 물려줄 수 있어 좋다고 느끼는 사람의 심리는 안타깝다. ‘자녀를 망치는 일을 할 수 있어 좋다’고 믿는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자녀를 생각하는 한국 부자의 마음은 자녀의 교육관에서 뚜렷했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53%)이 ‘자녀를 해외로 유학 보냈다’고 했고 36%가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자녀 유학’은 한국 사회에서 부의 상징이다.

 우리 사회에서 부자의 삶의 모습은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서 명품 쇼핑을 즐기는 사람들’로 나타났다. 부자들이 보유한 자동차는 벤츠와 렉서스가 18%로 가장 많았다. BMW가 12%, 아우디(6%)와 볼보·혼다·인피니티·폴크스바겐(각 3%) 등이었다. 국산차로는 그랜저가 9%로 가장 많았고, 에쿠스·오피러스가 각각 8%로 뒤를 이었다. 국산차의 경우 세컨드 차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사회에서 외제차는 분명한 부의 상징이다.

 부자들이 선호하는 명품 브랜드는 응답자 중 16%가 샤넬을, 루이뷔통이 13%로 2위, 에르메스·까르띠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명품을 살 때 가장 고려하는 사항은 브랜드의 명성(44%), 이어 희소성과 유행을 언급했다. 부자가 남에게 인정받는 방법이 명품 소비였다. 재미있게도 명품 구입을 ‘주변의 권유에 따라 한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명품 소비에서 가격을 중시한다는 의견은 11%, 투자가치를 생각한다는 의견은 3%에 불과했다. 디자인과 품질·취향 등도 소수 의견이었다. 좋아하는 술은 48%가 와인을 꼽았다. 위스키가 16%로 2위, 맥주가 13%로 3위를 차지했다. 소주도 11%로 비교적 높았다.

 부자와 당신의 차이가 느껴지는가? 소비 성향, 라이프 스타일, 술에서 별 차이가 없다면 당신은 이미 부자로 살고 있다. 부자가 아니면서 이런 취향을 가진 게 혹시 허영인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인간이라면 모두 허영을 부리게 마련이다. 한국의 부자들은 현실에 대한 관점이나 삶의 방식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과 별 차이가 없었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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