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안 특별기고 ‘금은 정말 안전자산 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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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 오랫동안 투자자와 수집가들을 매혹해 왔다. 금은 부의 상징이었다. 화폐와 동의어이기도 했다. 하지만 1971년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로 미 달러화와 금의 태환이 중단되면서 금은 투자자들에게 별종의 자산이 됐다. 그리고 요즘 같은 경기 침체기에 금은 값이 계속 오르는 유일한 자산인 것처럼 보인다. 이미 지난 20년간 가장 많이 올랐고, 명목 상승률로 보나 물가를 감안한 실질 상승률로 보나 거의 사상 최고가 수준이다. 금값은 앞으로도 계속 오를까? 그럴 가능성이 커 보인다.

 거시경제 여건이 나쁜 요즘 같은 때 금값을 부추기는 요인은 낮은 실질금리, 인플레이션 및 그 기대심리, 금융시장의 공포 등이다. 이 세 가지 요인은 상호작용한다. 낮은 금리는 유동성 공급을 늘린다. 이는 다시 물가를 자극한다. 중앙은행들은 시장의 압력과 경기 침체에 대비해 금리를 낮추고 통화공급을 늘린다.

 세계 중앙은행들은 제각기 경기 침체에 대응하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노력들이 경기를 부양할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조치들이 의미하는 건 다만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낮게 유지하고, 통화공급은 늘 것이란 사실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늘어난 유동성은 금값을 올리는 데 일조한다.

 금값을 좌우하는 두 번째 요인은 인플레이션 전망이다. 요즘처럼 경기가 나쁠 때 물가는 안정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다수 분석가의 생각과 달리 인플레이션은 심각해 보인다. 물가안정실업률(NAIRU·물가를 자극하지 않는 수준의 실업률)이란 게 있다. 미국 의회 예산처는 이를 5.5%로 추정했는데, 지나치게 낮게 잡았다. 주택 건설경기 회복 지연, 기술력 악화로 인한 높은 실업률, 미국 교육시스템과 고용주들이 원하는 숙련노동 간의 불일치 등을 감안하면 NAIRU는 6.5%를 넘을 것으로 추정해야한다. (※실제 실업률이 NAIRU에 가까울수록 물가상승 압력은 높다고 판단, 현재 미국실업률은 9%)

 또 다른 걱정거리는 중국이다. 중국은 값싼 상품을 수출해 미국 물가안정에 큰 몫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 중국 자체가 인플레이션 압력을 겪는 상황이다.

실질임금을 올리라는 요구는 지역 폭동으로 번지며 사회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중국이 단계적으로 비숙련 저임금 노동에서 벗어나는 동안 중국의 값싼 수출에 의존해 오던 여러 선진 경제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에 놀라게 될 것이다.

 금값을 밀어 올리는 마지막 요인은 거시경제 위험이다. 경기 침체 또는 저성장은 이미 유로존 주변부 국가를 부도 직전까지 몰고 갔고, 유럽 및 글로벌 금융시스템 전체에 악영향을 미쳤다. 이것이 해결되려면 길고 지루한 정치적 절차가 필요하다. 즉 앞으로도 상당 기간 시장에 긴장 요소가 될 것이다.

 그럼 지난 3년간 그랬듯 금값은 앞으로도 매년 15% 정도씩 오를까? 앞서 살펴본 요인들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금을 포함해 귀금속류 자산의 치명적 단점 하나는 명심해야 한다. 진짜 가치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예쁘고 단단하기도 해서 액세서리로 만들어지고, 가전제품에도 들어간다. 하지만 극히 일부일 뿐이다. 금의 가치는 온전히 투자자들의 합의에 달려 있다. 따라서 금값은 3000달러 이상 갈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투자자들의 ‘변심’ 말고는 다른 이유가 전혀 없어도 1000달러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다니엘 안 씨티그룹 선임 이코노미스트

◆다니엘 안=씨티그룹 선임 이코노미스트, 상품 전략가. 바클레이스 캐피털, 리먼브러더스 등을 거쳐 미 최대 헤지펀드였던 시타델 인베스트먼트 그룹에서 거시경제 리서치 헤드로 일했다. 프린스턴대를 졸업했고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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