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흐리르 광장 또 유혈시위…이집트‘제2 혁명’ 불붙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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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집트 민주화 운동의 성지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또다시 유혈시위가 발생해 이집트 정국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2월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을 축출했던 민주화 세력이 이번에는 과도정부를 이끌고 있는 군부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선 것이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20일(현지시간) “타흐리르 광장에서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과 군경이 충돌해 12명 이상 숨지고 수백 명이 부상했다”며 “시위대 해산에 나선 군경이 고무탄과 최루탄을 무차별적으로 발사하면서 유혈 충돌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또 “지난 18일부터 카이로·알렉산드리아·수에즈 등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시위가 발생해 지금까지 30명 넘게 숨지고 1000여 명이 다쳤다”고 덧붙였다. 현지 언론들은 “이집트에서 제2의 민주화 혁명이 다시 불붙고 있다”며 “시위대들이 후세인 탄타위 군 최고위원회 사령관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격렬하게 시위를 벌였다”고 전했다.

 외신들에 따르면 시위대는 “군부가 귀를 닫은 채 우리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군부의 신속한 민정 이양을 요구하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무바라크의 30년 독재 붕괴 이후 권력 공백에 따른 혼란을 막고 원활한 민주화 추진을 위해 군부가 국정운영을 맡고 있다. 군부가 과도정부를 이끌면서 새로운 헌법 제정과 선거 실시 등 을 총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이집트 내에서는 군부가 장기 집권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민주화 세력은 군부가 이달 초 내놓은 ‘신(新)헌법 기본 원칙’에 분노하고 있다. 군부가 국회의 관리·감독 대상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과도정부는 국영TV를 통해 성명을 발표하고 “최근의 유혈시위 사태로 인해 정치 일정이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며 “하지만 28일로 예정된 총선을 차질 없이 실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집트 민주화 세력은 앞서 법원이 “이번 총선에 무바라크 정권의 인사들도 참여할 수 있다”고 결정하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의회를 장악했던 전 집권당인 국민민주당(NDP) 인사들의 정치 재개를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 정권의 주요 장관들과 국민민주당의 주요 간부들 중 상당수가 부패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거나 구금 중이다. 하지만 일부 인사들은 정당을 창당하거나 기존 정당에 가입해 이번 총선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은 “이집트에서는 전통적으로 군부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만큼 이번 시위 사태가 확산될 경우 향후 민주화 일정에 차질을 빚을 우려도 있다”고 분석했다. 캐서린 애슈턴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 대표는 20일 성명을 내고 “군부는 신속한 정권 이양과 민주주의 수호를 원하는 시민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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