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선의 ‘쏘리 사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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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정지선 회장

주부 김지현(32)씨는 최근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갔다가 사과 세 개를 받았다. 화장품 매장 직원의 응대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고객상담실을 찾아가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은 터였다.

 김씨의 항의가 끝나자 직원은 “말로만 사과하는 게 죄송해 준비했다”며 진짜 사과를 건넸다. 김씨뿐이 아니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은 고객상담실을 찾아 건의하는 모든 고객에게 진짜 사과를 준다. 지난달 도입된 일명 ‘쏘리(Sorry)사과’다.

 이 사과는 현대백화점그룹 정지선(39) 회장의 ‘정지선식 백화점 서비스’의 상징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정 회장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백화점 전문기업으로서의 차별화를 강조한다. 국내 백화점 업계 1위인 롯데와 3위인 신세계가 백화점·마트 등 유통업 전반에 걸쳐 사업을 영위하는 반면 현대는 백화점에만 집중한다. 그런 만큼 다른 백화점은 흉내 낼 수 없는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선 지난달부터 고객상담실을 찾아 건의하는 모든 고객에게 ‘쏘리(Sorry)사과’를 준다. “말로만 사과하지 않겠다”는 뜻을 담은 것이다.

 그 가치로 정 회장이 내세우는 것은 ‘진정성 있는 서비스’다. 상품 구성이나 복합쇼핑몰 같은 점포 형태 등은 쉽게 따라 할 수 있지만 서비스는 하루아침에 따라올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 회장이 지난해 2020년 비전으로 목표 매출이나 업계 순위를 제시하지 않고 ‘고객에게 가장 신뢰받는 기업’을 내세운 것 역시 그런 맥락이다.

 쏘리사과도 2020년 비전에서 출발했다. 지난해 말 본사 고객서비스팀이 ‘신뢰를 얻기 위해 어떤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가’를 놓고 토론을 벌였지만 뾰족한 답을 찾지 못했다. “고민하지 말고 고객에게 직접 물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렇다고 쇼핑하러 온 고객을 붙잡고 설문조사를 벌일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고객 게시판에 검색엔진을 다는 것이었다. 2001년부터 운영돼 오던 고객 게시판엔 이미 수만 개의 글이 축적돼 있었다. 하지만 일일이 열어보지 않고선 고객이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검색엔진을 달아 고객 불만을 미연에 방지하는 ‘예방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한 건 그래서다. 프로젝트 이름도 ‘고객의 소리(Voice of Customers)’로 정했다. 쏘리사과는 “말로만 사과한다”는 ‘고객의 소리’에서 나온 서비스다.

 그린포인트 역시 고객 게시판에서 나온 제도다.

 이 제도는 매장마다 고객 동선을 파악해 한두 걸음 떨어진 위치에 초록색 점을 붙인 뒤 손님을 기다릴 때 직원들이 서 있어야 할 자리를 정해두는 것이다. 물건을 사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을 덜어주려는 배려다.

 고객들이 직원을 칭찬한 게시물을 분석해 보니 “부담감 느끼지 않게 해줬다”는 의견이 많았다는 것을 반영해 도입한 것이다.

 올해 7월부터 서울 킨텍스점과 목동점·신촌점에서 운영 중인 판매사원 대상 문화센터도 ‘정지선식 백화점 서비스’의 핵심 중 하나다. 각 점포 매장에서 근무하는 협력업체 판매 담당 직원들에게 아이돌 가수 댄스·와인·영어강좌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정 회장이 임원회의 때 “백화점 서비스의 핵심은 인적 서비스다. 판매사원을 챙겨라. 그래야 고객이 좋은 서비스를 받는다”고 강조하면서 시작됐다.

 현대백화점 측은 “이런 제도를 실시한다고 해서 바로 매출이 오르는 건 아니다. 그렇더라도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고객과 소통하겠다는 게 정 회장의 뜻”이라고 말했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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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현대백화점 대표이사회장(그룹 총괄)

197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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