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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총파업 노·정협상 타결 막전막후]

중앙일보

입력

사상 초유의 은행 총파업을 예고한 금융노조의 강경 투쟁과 이를 저지하기 위한 정부의 끈질긴 노력은 파업시한 이전 타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결국 파업에 돌입하고 나서야 극적으로 접점을 찾았다.

비록 사전에 파업을 막지 못하고 국민에게 불편을 안겼지만 파국을 막으려 공개.비공개적으로 대화채널을 열어두었던 정부의 인내는 은행 파업이 만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대타협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높이 살 만하다.

`파업불사'의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던 금융노조도 결국 대화와 타협으로 정부의 양보를 이끌어내면서 사태를 해결,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지난 7일 1차 노.정 협상을 시작으로 11일 협상이 타결되기까지 긴장의 연속이었던 5일간의 `드라마'를 되돌아 본다.

▲7일 1차협상 = 금융노조가 7월1일 보라매공원에서의 대규모 파업 진군집회를 가지면서 `7.11 은행 총파업'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됐고 정부는 파국을 막기 위해 노조측과의 대화를 시도, 노사정위원회의 주선으로 7일 오전 10시 명동 은행회관에서 처음으로 공식 협상을 벌였다.

당초 상견례와 서로의 입장을 주고받는 수준에서 첫 협상이 끝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이헌재 재경부장관,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 이용득 금융산업노조 위원장은 협상장으로 중국음식을 배달시켜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양측 대표들이 점심식사를 함께 하며 5시간여 협상을 지속하자 협상장 밖에서는 `첫 만남에서 극적 타결이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섣부른 관측이 대두되기도 했지만 결과는 무소득이었다.

협상 뒤 정부는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한 반면 노조측은 "정부의 태도가 불성실했다"고 지적, 양측의 시각차를 여실히 드러냈고 특히 이용득 노조위원장은 "오늘
같은 분위기면 타결을 기대할 수 없다"고 까지 해 기대를 저버렸다.

하지만 양측은 일요일인 9일 2차협상을 갖기로 합의, 대화를 통한 사태해결의 실낱 희망을 안겼다.

▲9일 2차협상 = 사상 초유의 은행 총파업을 막기 위해 휴일을 반납한 양측 대표는 9일 오후 2시 1차협상 때와 같은 장소인 명동 은행회관에서 두번째로 대좌했다. 1차협상이 서로의 원칙론적인 입장을 전달한 자리였다면 2차협상은 원칙의 이해를 전제로 하고 각론에서 의견을 절충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2차협상은 1차협상보다 짧은 약 3시간30분만에 끝났고 노조측이 이헌재장관, 이용근 위원장에 대해 강한 불신을 나타내며 "책임있는 당국자가 구체적인 타협안을 제시할 것"을 요구, 분위기가 급냉했다.

더욱이 이용득 위원장을 위시한 금융노조 지휘부는 2차협상을 마치자마자 명동성당으로 이동, 파업투쟁을 가시화하는 모양새를 갖춰 정부를 더욱 긴장시켰다.

위기감이 고조되자 이날 밤 이용근 금감위장이 단신으로 명동성당을 방문, 이용득 위원장과의 대화를 시도했으나 노조측은 이미 파업의 수순에 들어간 듯 완강했다.

▲10일 3차협상 = 2차협상이 결렬된 뒤 추후 협상 일정도 잡지 못한 정부는 총파업 D-1인 10일 하루종일 여러 경로를 통해 금융노조측과의 접촉을 시도했고 결국 노사정위원회의 주선 아래 밤 10시 명동 은행회관에서 노조 지휘부와 세번째로 마주앉았다. 예정된 파업시한까지는 불과 2시간밖에 남지 않은 급박한 상황.

같은 시각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금융노조 조합원들은 연세대와 명동성당에 집결, 파업 철야전야제로 투쟁의지를 고조시키고 있었다.

정부는 이종구 재경부 금융정책국장과 이우철 금감위 기획행정실장이 노조측에 제시할 타협안을 마련했고 김호진 노사정위원장이 이를 노조측에 제시, 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정부가 노조측의 요구를 일부 수용한 타협안으로 협상에 임했다는 소식에 막판극적 타결 기대감이 고조됐고 밤 11시30분께 실무위원회가 세부사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키로 하자 회의장 바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자정을 넘겨 11일 새벽 실무위원회가 두 차례 중단되고 이용득 노조위원장이 새벽 4시40분께 협상장을 떠나 연세대로 향하면서 파업을 선언, 파국을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실무위원회 협상 과정에서 어느 정도 양측의 입장이 접점을 찾았고 이용득 노조위원장은 정부의 과거행태를 불신, 협상에서 논의된 내용을 명문화해 다시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밝힌 것으로 전해지면서 다시 대화에 의한 타결의 희망을 안겼다.

은행 영업이 시작된 9시30분 전국 일선 은행영업점이 정상적으로 업무에 들어가고 파업에 불참하는 조합원, 금융기관이 속속 늘어나 우려됐던 `금융대란'이 일어나지 않자 금융노조 지휘부는 조금씩 흔들렸다.

정부와 노조는 오전 내내 비공식적으로 실무위원회 협상을 재개했고 타협의 가능성이 짙어지자 오후 1시 이용근 금감위장이 명동성당을 방문해 이용득 노조위원장과 독대,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눴고 결국 서로 한발짝 씩 양보하는 선에서 대타협을 이뤄냈다. (서울=연합뉴스) 김영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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