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물가안정에 소극 대응 통화정책 변화 기회 놓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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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현오석 KDI 원장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물가안정 목표에 적극적이지 못했다며 공개적으로 한국은행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미리 금리를 올렸으면 글로벌 재정위기를 맞아 거시정책을 운용할 여력이 커졌을 텐데 중앙은행이 ‘실기(失機)’하는 바람에 당장 통화정책을 쓰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KDI는 20일 경제전망을 발표하면서 ‘정책금리 결정 행태 분석과 통화정책에 대한 시사점’ 보고서를 함께 공개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통화정책은 통상적인 기준에 비춰 물가안정에 적극적이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KDI는 지난 1년간의 정책금리는 다소 낮은 수준에서 유지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를 쓴 이한규 연구위원은 “최근 정책금리는 대체로 물가안정에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되는 2001~2008년 통화정책과 비교해서도 낮은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2011년의 경우 물가안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되며 이는 향후 물가상승 기대 안정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KDI는 대외 여건이 불확실한 만큼 당장 금리를 올리기도 힘들다고 진단했다. KDI는 “통화정책 기조를 긴축적 방향으로 변경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며 “하지만 가계부채 증가세와 물가불안을 감안할 때 현재의 확장적 기조를 확대하는 경우 저금리의 부작용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통화당국은 그저 손 놓고 있어야 할까. KDI는 “대내외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경우에 물가안정을 위한 금리 정상화를 조속히 시행하겠다는 정책의지를 명확히 표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힘들어도 나중에 꼭 금리를 정상화하겠다는 시그널을 확실하게 보내달라는 얘기다.

 ◆내년 경제도 게걸음=KDI는 이날 올해와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3.6%와 3.8%로 내려 잡았다. 올해 성장률은 지난 5월에 전망한 4.2%보다 0.6%포인트 낮아졌고, 내년 전망치도 종전의 4.3%보다 0.5%포인트 떨어졌다.

 내년 상·하반기엔 각각 올해 같은 기간보다 3.2%, 4.2% 성장할 것으로 봤다. 내년 상반기에 선진국의 경기둔화와 불확실성이 지속되다가 하반기에 점차 해소되면서 ‘상저하고(上低下高)’의 성장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경상수지 흑자폭은 수출 둔화와 원화가치 상승 등으로 올해의 213억 달러보다 줄어든 151억 달러에 그칠 것으로 봤다.

 현오석 KDI 원장은 “경기 사이클상 하락세가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날씨 전망과 경제 전망이 자주 틀린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적어도 지금 날씨는 알 수 있는 날씨 전망과 달리, 경제 전망은 지금 경제(가 어느 국면인지)조차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더 어렵다”고 말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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