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엄마와 함께] 도둑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아, 도둑맞기 싫어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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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도둑의 탄생
김진나 지음, 문학동네
240쪽, 9500원

마법학교에 대한 판타지야 얼마나 흔한가. 이 소설은 독특하게도 도둑 판타지다.

 주인공 로보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외로운 아이다. 외모부터 재능까지 반짝반짝 빛나 안팎에서 대접받는 언니 보보와 달리 특징도 재능도 없어 베란다 방 한 켠에 잡동사니를 쌓아두고 사는 신세다.

 그러던 어느 날 『완전한 도둑』이란 책을 우연히 읽게 된다. 계시라도 내리듯 도둑 하나가 경찰을 피해 달아나고, 로보는 저도 모르게 그 도둑의 뒤를 쫓아 내달리다 허공에 지어진 도둑 세계에 발을 들인다. 로보는 얼떨결에 도둑 세계의 학교 비설당에 입학해 매일 저녁 허공의 학교로 달려간다. 어차피 매일 밤 집을 비워도 가족들이 알아채지 못할 만큼 존재감이 없다.

 도둑 세계의 도둑질은 좀 다르다. 지상 세계가 오염되면 허공의 도둑 세계는 붕괴된다. 그래서 지상 세계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의 흐름을 막고 있는 물건들, 또 분노·열등감·적개심·오만·욕심·거짓말·이기심 따위를 훔친다.

 “도둑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아. 당연하잖아. 소유하고 집착하게 되면 제대로 훔칠 수가 없어. 게다가 소유하는 순간 도둑맞을 위험이 생기고.”(98쪽)

 로보가 도둑 세계에서 자리 잡아갈수록 지상 세계에서의 흔적은 희미해진다. 지상의 이름을 훔쳐 비설당 출석부에 올려 놓아서다. 지상 세계 선생님은 로보의 이름을 읽어내지 못해 잘못을 저질러도 혼내지 않는다. 편애한다고 오해한 급우들은 로보를 따돌린다. 지상의 생활은 더욱 엉망이 되어간다.

 그래도 로보는 도둑이 되길 꿈꾼다. 무언가를 훔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가질 수 없는 존재라는 깨달음이 로보를 더욱 부추긴다. 그러나 도둑 세계도 완벽하지는 못하다. 로보를 도둑 세계로 이끌었던 이가 말한다.

 “내 도둑질이 과도한 의료 기술 같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어. 자기가 가지고 있던 나쁜 요소가 없어진다고 사람이 꼭 행복해지는 건 아니었어.”(225쪽)

 판타지의 옷을 입고 있지만 삭막한 세태에 대한 노골적이지 않은 풍자와 은유, 만만치 않은 철학이 담겨 있다. 천천히 곱씹어가며 읽어볼 만한 매력적인 작품이다. 번호로만 불리는 아이들, 탈출구를 찾는 청소년에게 권한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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