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베켄바워 있는곳에 독일 영광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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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베켄바워(54)는 '카이저(황제)' 로 불린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 왕은 만지는 것마다 금으로 변했다지만 베켄바워가 가는 곳에는 황금빛 월드컵이 있다.

1974년 서독 월드컵 당시 주장선수로서 조국에 우승컵을 안겼던 그는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대표팀 지휘봉을 잡아 또다시 우승컵을 가져왔다.

2000년 7월, 초로의 신사가 된 그는 독일의 2006년 월드컵 유치위원장을 맡아 막판 뒤집기로 남아공을 제치고 32년 만에 '꿈의 구연' 을 개최하는 주역을 맡았다. 베켄바워의 축구 인생은 황제의 화려함보다 더욱 빛난다.

1945년 뮌헨에서 태어난 베켄바워는 14세때 자신이 현재 구단주로 있는 바이에른 뮌헨 소년팀에 입단해 62년 17세때 프로선수가 됐다.

프로데뷔 1년 만에 국가대표로 선발된 베켄바워는 10년간 대표팀 부동의 수비수로 세 차례 월드컵 무대에 나서 66년 잉글랜드대회 준우승, 70년 멕시코대회 3위, 74년 우승에 기여했다.

그의 플레이는 우아하고 냉철했으며 빗속 경기에서도 유니폼에 흙이 묻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 최후방에 처져 있다가 기회가 생기면 공격에 적극 가담했다.

포지션에 얽매이지 않은 그의 플레이는 '리베로(자유인)' 라는 이름으로 세계 축구의 전술 개념을 바꿔 놓았다.

원리원칙에 철저한 독일이 지도자 학교를 수료하지 않은 그에게 지도자 자격증을 주면서 90년 이탈리아월드컵 사령탑을 맡길 정도로 베켄바워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애정과 존경은 절대적이었다.

베켄바워는 당시 아르헨티나와의 결승전에서 마라도나를 봉쇄하기 위해 미드필드에서부터 3~4명이 둘러싸는 전술로 결국 3 - 2 승리를 거뒀다. 이는 지금도 유행하고 있는 3-5-2 포메이션의 원형이 됐다.

그리고 3년 전 그에게는 월드컵 유치라는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다. 이후 그는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을 찾아 지구를 10여바퀴나 돌았다.

개최지 결정 투표 사흘을 앞둔 지난 3일 브라질이 남아공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하자 독일의 유치는 물건너 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아시아지역 집행위원들을 끈질기게 설득, 남아공으로 돌아섰던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지난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3연패로 예선 탈락하며 '녹슨 전차군단' 으로 전락한 독일축구는 월드컵 유치로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황제보다 더욱 화려한 축구 인생을 살아온 베켄바워에게 이제는 '독일축구의 황제' 에서 '세계축구의 수장' 인 FIFA회장으로 올라서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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