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처리땐 ISD 재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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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15일 한·미 FTA 비준을 위해 국회를 방문해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안성식 기자]

15일 이명박(얼굴) 대통령과 박희태 국회의장, 여야 지도부 간 80분간의 회동이 있었던 국회의장 접견실엔 여섯 글자가 적힌 메모지 한 장이 남아 있었다. ‘空手來 滿手去(공수래 만수거)’. 빈손으로 왔다가 손을 가득 채워 돌아간다는 뜻이다. 누가 쓴 것인지 확인되진 않았지만 여권 인사의 ‘작품’으로 보인다.

 전날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이 대통령이 국회에 빈손으로 왔다간,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었다.

 그래서인지 이 대통령은 이날 빈손으로 국회에 오진 않았다. 이 대통령은 회동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와 관련해 “국회가 한·미 FTA를 비준해주고 이러이러한 것을 해달라고 정부에 권유해달라. 그러면 내가 발효되고 3개월 내에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통령이 ISD 재협상을 보증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ISD 존폐 여부를 다루는 재협상은 불가능하다”는 정부의 공식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정부의 공식 입장에서 진일보한 제안을 내놓은 것이다. 결국 빈손으로 왔다가 손을 가득 채워 가는 쪽은 민주당이라는 게 메모지의 암시로 보인다. 그럼에도 손 대표는 선뜻 수용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ISD 재협상 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청와대와 민주당이 밝힌 당시 대화를 재구성했다.

 ▶손 대표=제안을 해도 저쪽(미국)이 안 받으면 어떻게 하겠나.

 ▶이 대통령=미국이 응하지 않으면 책임지고 응하도록 하겠다. 나는 FTA의 길을 닦는 심정이다. 나는 대통령으로서 역할을 하겠다.

 ▶손 대표= ISD는 경제주권에 대한 것이다. 다만 대통령의 새로운 제안이 있었으니 당에 전달하겠다.

  ▶이 대통령=ISD는 노무현 대통령 때도 논란이 됐던 문제다. 당시 신희택 위원장(노무현 정부 당시 ISD 태스크포스 위원장)을 중심으로 논의해 통과한 사항이다. 왜 민주당에서 이를 다시 문제 삼는지 모르겠다.

 ▶손 대표=(이 대통령의) 국회 방문이 야당을 압박하고 일방 처리하려는 수순이 아니냐는 의혹이 언론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 대통령= 손 대표가 야당 입장을 곤란하게 하려고 한다고 했지만 만약 그렇게 하려고 한다면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더 있다. 나는 정치적이지 못하다. 정직한 대통령으로 남으려 한다.

 ▶손 대표=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만나 ISD 재협상을 논의했느냐.

 ▶이 대통령=정상들 간에 논의한 건 (밖에) 얘기할 수 없는 거다.

 이 대통령은 대신 이 같은 말을 했다.

 “민주당의 요구가 사전에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재협상에 대해) 약속을 받으라는 것 아니냐. 나도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요구하면 (미국이) 응하게 돼 있는 조항이 있는데도 오바마 대통령에게 요구할 테니 제발 들어주라는 게 얼마나 우스운 일이냐. 주권국가로서 맞지 않는다. 정부가 그렇게 하려면 오히려 국회가 말려야 한다.”

 협정문 22장은 발효 후 90일 이내에 설치되는 공동위에서 ‘협정의 개정을 검토하거나 협정상의 약속을 수정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 대통령은 여러 차례 격한 어조로 민주당 측을 설득했다고 한다. “한·미 FTA가 빨리 비준이 되면 일본 기업이 한국에 투자하게 된다. 일자리가 생긴다. 야당이 왜 이런 좋은 기회를 어물어물하게 넘어가려는지 모르겠다. 왜 야당에선 오바마 대통령만 믿느냐, 한국 대통령을 믿어야지”라거나 “나는 선의다. 내가 나라를 망치려고 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라는 식이다.

 회동 후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파격적 제안”이라고 반겼다. 그러나 민주당은 회동 후 “내일 의원총회에서 대통령의 뜻을 전달한 뒤 의원들 의견을 들을 것”(이용섭 대변인)이란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대통령이 보장했다는 것 외에 정부 입장(발효 후 재협상)과 다르지 않다는 게 민주당 주장이다.

 민주당은 이날 이 대통령과의 회동에 불참하려다 오전 당 지도부 회의에서 입장을 바꿨다. 민주당 한 중진의원은 “평소 이 대통령에게 야당과 대화에 나서라고 요구해온 것과 상충될 수도 있어 대화에는 나서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1500억원 상당의 주식 기부 사실이 공개된 상황에서 여야 대립이 격화될 경우 여론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글=고정애·백일현·강기헌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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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대한민국 대통령(제17대)

1941년

[現] 민주당 국회의원(제18대)
[現]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194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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