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학교 가라” 소리 듣던 성훈이 당당히 대학 보낸 ‘마징가 엄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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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성산동 공원에서 홍성훈군이 성균관대 합격통지서를 들고 어머니 김옥희씨와 기쁨을 나
누고 있다. 성훈군은 3남1녀 중 장남이다. [김성룡 기자]

“문학이 왜 좋아요?”

 홍성훈(19)군은 기자의 질문에 천천히 오른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트북 자판 위에서 그의 두 번째 손가락은 목소리 대신이었다. 그는 ‘독수리 타법’으로 신중하게 한 글자, 한 글자를 만들어냈다.

 “제가 말을 못하잖아요. 그래서 발언할 기회도 적고, 한 번에 많은 생각과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문학은 그게 가능하거든요. 저는 글이란 ‘그릇’으로 제 생각을 담아서 보여주고 싶어요.”

 지난달 성훈군은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인문학부에서 ‘자기추천전형제’ 수시 면접을 치렀다.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이 있는 학생을 뽑는 절차였다. 뇌병변 장애 1급인 그는 언어 장애는 물론 팔다리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한다. 면접관이 질문하면 성훈군은 컴퓨터로 답변했다. 그리고 지난달 28일 학교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다. 조미숙 입학사정관은 “수상 실적과 성적 면에서 비장애 학생들에게 뒤지지 않았고, 면접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본인의 의지가 강할 뿐만 아니라 작가로서 가능성도 엿보인다”고 설명했다.

 서울 성산동 성훈군 집에서 만난 가족들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어머니 김옥희(47)씨는 비장애인과 경쟁해 당당히 합격한 장남이 대견스럽기만 했다. “합격 소식을 들었던 날 가족 모두 엉엉 울었어요. 화물트럭을 운전하는 남편은 전화를 받고 운전하면서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학창 시절 ‘문학소녀’였던 김씨는 어린 아들에게 늘 책을 읽어줬다. 컴퓨터로 한글을 깨우친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매일 컴퓨터로 일기를 썼다.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적은 글은 또래들의 글과는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한국작가회의 백일장, 개천문학상, 전국 마로니에 백일장, 고정희 문학상 등 전국에서 글 잘 쓴다고 소문난 학생들이 출전하는 6개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 지난해엔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주는 ‘대한민국 인재상’을 여자 축구선수 지소연·여민지 선수와 함께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대입에서 줄줄이 낙방했다. 어머니 김씨는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은 학생이 대학을 못 가는 경우는 이제껏 없었다”며 “장애가 너무 심해 학교가 감당할 수 없다고 하거나, 아예 면접 기회를 주지 않는 곳도 있었다”고 했다.

  성훈군은 태어날 때 어머니가 실신해 3시간 동안 산소 공급이 끊기면서 장애를 얻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전사’가 되어야 했다.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생계가 어려울 때도 만삭의 몸으로 아들을 업고 재활치료를 받게 했다. 학교를 옮길 때는 늘 투쟁의 연속이었다. 어떤 학교는 “특수학교에 가라”며 입학을 거부했다. 김씨는 “어차피 사회에 나가면 비장애인과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데 어릴 때부터 일반학교에서 동등하게 교육받고, 또래들과 어울려 지내는 법을 배우길 바랐다”고 했다.

 성훈군은 어머니 등에 업혀 학교 계단을 오르내렸다. 어릴 적 일기엔 “엄마는 무쇠팔, 무쇠다리”라고 적기도 했다. “엄마는 어떤 존재냐”고 묻자 그는 “거의 모든 걸 해주시는 분인데, 이젠 독립해야 하는데 그게 될지 모르겠다”며 “당장 대학 등록금이 필요한데 집안 사정이 어려워 걱정”이라고 했다.

 성훈군은 재학 중에 반드시 소설가로 등단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가 쓰고 싶은 소설은 작가 박완서처럼 사람을 위로해주는 글이다.

글=김효은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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