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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7시간, 고3처럼 연습하는 천재 키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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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습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 사소한 부분까지 반복을 거듭하며 연습 시간을 꽉 채웠다. [사진작가 김윤배]

15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000여 객석은 텅 비었고 무대엔 약한 조명만 켜졌다. 덩그러니 놓인 피아노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40)이 무대에 올랐다. 키신은 17일 시드니 심포니와 함께 이 무대에서 공연한다.
연주곡은 쇼팽 협주곡 1번. 그가 나이 열셋에 세계 무대에 데뷔하며 연주했던 작품이다. 곱슬머리의 작은 소년이 흠잡을 데 없는 테크닉으로 이 곡을 쳤고, 이후 ‘신동’의 대명사로 각인됐다.

키신은 이 곡을 20년 넘게 수 없이 연주했을 터. 하지만 이번 내한에서 ‘하루 7시간씩 연습할 수 있게 해달라’는 조건을 달았다. 결국 공연 전 이틀 동안 오전 10시부터 두 시간을 예술의전당에서, 오후 1시부터 다섯 시간을 서초동 인근 스튜디오에서 보내게 됐다.

 이날 연습은 그 첫 순서. “공연장에서 모두 나가줬으면 좋겠습니다.” 10여 분 손을 풀던 그가 갑자기 일어났다. 공연 주최 측과 공연장 스태프 모두 퇴장하길 바랐다. 그리고 다시 앉은 그는 묵묵히 건반을 가다듬었다.

 키신은 단 한 번도 속도를 내지 않았다. 매우 느린 쇼팽이었다. 음악의 속도를 낮추고, 모든 부분을 꼭꼭 씹어 연습했다. 한 마디 한 마디 10여 차례 반복하며 마음에 들 때까지 다시 쳤다. 왼손과 오른손을 나눠 몇 번이고 따로 쳤다.

 1악장 ‘기초 공사’를 마치고 2악장으로 넘어갔을 땐 한 시간이 지났다. 키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대 뒤로 들어가 땀에 젖은 셔츠를 갈아입고 다시 나왔다. 2악장을 지나 3악장으로, 다시 1악장으로 돌아와 앞서 연습했던 대목을 몇 번이고 다시 연습했다. “시간이 다됐다”는 통보를 받을 때까지 피아노 앞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아쉬운 듯 악보 가방을 집어 들고 다음 연습 장소를 향했다.

 외국 연주자가 내한 공연을 앞두고 하는 연습은 보통 최종 점검 성격이다. 이미 다 돼 있는 음식을 다시 한 번 데워 내놓는 절차다. 하지만 키신은 처음으로 돌아가 악보를 다시 공부라도 하듯 건반을 가다듬었다.

 키신은 지금껏 50여 장의 앨범을 냈고, 한 해 70여 차례 공연하는 일류 피아니스트다. 하지만 연습 시간만큼은 초보자와 다를 바 없었다. 2009년 내한 당시 그는 “연주 때문에 외국 도시를 많이 가지만, 연습만 하기 때문에 모든 도시의 공항부터 호텔까지 길만 기억한다”고 말했었다. 이처럼 흔히 ‘천재’로 알려진 키신의 진짜 얼굴은 ‘연습벌레’였다.

 키신의 또 다른 별명은 ‘앙코르 피아니스트’다. 1997년 런던 프롬스 축제에서 7곡을 쏟아낸 후 ‘앙코를 세례’를 반복하고 있다. 한국 공연에서도 2006·2009년 각각 10곡의 앙코르를 연주했다. 이탈리아에선 최대 16곡을 연주했다. “머릿속에 몇 곡이 들어있느냐”는 질문엔 “가늠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미리 예고 되지 않은 앙코르는 즉흥적인 연주다. 하지만 피아니스트 키신의 준비 과정은 즉흥과 거리가 멀었다. 꼼꼼히 음표를 하나하나 다지고 일궜다.

 15일은 베를린 필하모닉(베를린필)의 내한 공연이 있던 날. 오케스트라가 오후 8시에 공연을 할 때면 오전이나 이른 오후에 리허설이 열리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날 베를린필은 리허설 시간을 오후 6시로 바꿨다. 키신의 연습 일정을 들은 베를린필의 배려였다. 세계적 명문 악단마저 양보하게 만든, 매서운 자기단련이다.

김호정 기자

 ◆예프게니 키신=1971년 모스크바생. 1984년 모스크바 필하모닉과 쇼팽 협주곡을 연주하고 라이브 앨범을 내놓은 후 신동으로 이름을 알렸다. 명문 학교, 혹은 유명 콩쿠르 출신이 아니면서도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2009년 내한 당시 다섯 시간 만에 티켓이 동나기도 했다. 쇼팽·라흐마니노프 등 낭만시대 음악에 정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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