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하이난다오의 핵잠수함 기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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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
베이징 특파원

화산 폭발로 생긴 대형 분화구와 새끼 분화구들이 밀집해 있는 섬. 전 세계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화산 동굴들이 즐비해 보물섬이라고 불리는 섬. 수심 7m까지 맑게 보일 정도로 오염되지 않은 푸른 바다. 겨울에도 섭씨 20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아열대 기후. ‘동양의 하와이’란 애칭으로 더 잘 알려진 중국 최남단 하이난다오(海南島)다. 2004년 처음 방문했을 때 섬의 남부 싼야(三亞) 지역은 말이 휴양지였지 덜렁 리조트 몇 개 들어선 어촌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올해 4월, 보아오(博鰲)포럼 중 다시 찾은 싼야 일대는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였다. 싼야 시내뿐 아니라 동쪽으로 20여㎞ 떨어진 야룽(亞龍)만은 최고급 호텔·리조트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중국·러시아·인도·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의 5개국 정상이 참석하는 제3차 브릭스(BRICS) 회의가 야룽만의 한 호텔에서 열렸을 정도로 국제적 휴양지의 면모에 손색 없었다.

 야자수와 원색의 파라솔이 늘어선 하얀 백사장엔 청춘남녀 러시안들이 몰려와 남국의 햇살에 몸을 맡기는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야룽만의 수평선은 아름답고 평화로웠을 것이다.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그 수평선 아래로 중국이 자랑하는 최신예 진(晋)급 핵잠수함이 들락거리고 있다는 것을. 만재 배수량이 1만2000t에 달하는 이 잠수함은 미국 본토까지 도달할 수 있는 사거리 8000㎞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쥐랑(巨浪)-2’를 탑재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병기다. 싼야 바다는 남중국해 복판에 위치해 시급을 다투는 분쟁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이 곳에 기지를 둔 인민해방군 해군은 최단 거리의 접근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남중국해는 원유·천연가스 등 중국이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해외 에너지원이 공급되는 생명선이다. 유사시 이 바다가 봉쇄되면 중국은 목줄을 내준 셈이나 다름 없다.

 중국 정부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으며 하이난다오를 아시아를 대표하는 휴양지로 키우고 있다. 하지만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처럼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공격 대상이 된다’는 논리는 찾아볼 수 없다. 셈에 민감한 중국인의 특성상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법한데 말이다. 지상에 건설한 파라다이스도 안보 현실과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 때문일 것이다.

 아마존·할롱베이·이구아수폭포 등과 함께 세계 7대 자연경관에 뽑힌 제주도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관광자원으로 풀 한 포기, 돌담 하나까지 아끼고 가꿔야 하는 국가적 관심 대상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제주도는 국가의 존폐를 다루는 해상 생명선을 지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안보자원이기도 하다. 중국을 자극할 수 있다며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세력은 해군기지와 평화 논리가 충돌하지 않는 중국적 현실주의에는 어떻게 답할지 자못 궁금하다.

정용환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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