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보씨’ 원래 시인이었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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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곽효환씨

두터운 근시 안경에 우스꽝스러운 상고머리, 만성두통·중이염·변비는 물론 신경쇠약 증세도 있어 신경안정제 ‘삼비스이(3B水)’를 복용했던 약골, 지금의 조선호텔 부근에 있었던 다방 ‘낙랑파라’(樂浪 parlour)에 들려 가배차(珂?茶·커피)를 마시고 식민지 근대 경성의 거리를 활보하던 만보객(萬步客), 무엇보다 일상을 소설 속으로 끌어들인 단편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세태소설이라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장편 『천변풍경』 등으로 한국문학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긴 거인.

 소설가 박태원(1910∼86)의 풍모는 이처럼 다채롭다. 한국전쟁 때 월북했는데도 여전히 그의 이름이 심심찮게 거론되는 건 역시 그가 남긴 빼어난 소설 때문이다.

구보 박태원

 시인 곽효환(44)씨가 최근에 출간한 연구서 『구보 박태원의 시와 시론』(푸른사상)은 그런 구보(丘甫) 박태원의 프로필에 새로운 면모를 하나 추가할 모양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시인으로서의 박태원’의 모습 말이다. 곽씨에 따르면 지금까지 박태원에 대한 연구는 300건이 넘는다. 하지만 그의 시에 대해 본격적인 분석을 시도한 연구는 없었다.

 곽씨는 “박태원의 시까지 연구 대상으로 삼아야 그의 문학세계가 온전히 보인다”는 입장이다. “지금까지는 덜컥 모더니즘 계열의 소설로 작가 생활을 시작해 월북 이후 『갑오농민전쟁』 같은 장편을 쓰며 리얼리즘으로 돌아섰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지만 실은 박태원의 문학적 출발은 리얼리즘이었다”는 것이다. 즉 소설보다 시로 먼저 등단한 구보의 시 작품에 사실적인 면모가 보인다는 것이다.

 곽씨의 책에 실린 구보의 시는 모두 19편이다. 1926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등단작 ‘누님’부터 1935년까지 쓴 작품들이다. 원래 그가 남긴 시는 훨씬 더 많았던 모양이다. 곽씨는 “구보가 문학적 스승으로 삼았던 춘원(春園) 이광수를 찾아가 100편이 넘는 자작시를 맡겼다는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 시편들은 유실됐다.

 책에는 구보의 시에 대한 곽씨의 평가, 구보가 스스로 시론을 밝힌 산문, 구보의 장남 박일영씨가 쓴 회고 ‘구보, 남조선문학가동맹 평양시찰단 일원으로 평양에 가다’ 등도 실려 있다. 구보의 시와 더불어 그의 인간적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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