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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새 화두 'CRM' 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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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CRM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급속도로 모든 산업체에 번지고 있다. 과연 CRM이 수년 전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전사적 자원관리)가 그랬듯 또 하나의 중심 솔루션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무엇 때문에 CRM(Customer Relation ship Management:고객관계관리)이 2000년 벽두부터 화두가 되었을까? 무엇보다 CRM은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속적 노력의 일환이다. 기업이 경쟁력을 위해 예전부터 노력했던 기본적인 세 가지는 제품 선도력(Product Leadership), 뛰어난 생산성(Operational Excellence), 고객 친화력(Customer Intimacy).

그런데 그 동안의 경영 혁신 활동 및 솔루션들은 상대적으로 뛰어난 업무 생산성(Operational Excellence)에 집중돼 왔다. 그 다음으로 노력해 온 부문이 제품 선도력으로, 특히 품질 및 디자인 관련 혁신 노력에 많은 역량이 투입됐다.

하지만 결국 한계효용 원칙에 예외는 없다. 즉, 지속적인 생산성 향상 노력의 효과가 과거에 비해 점차 작아지고 1%의 생산성 향상에 요구되는 노력이 과거보다 더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비해 고객 친화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기업의 투자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개념적인 논의나 비정기적인 단발 투자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고 체계적인 투자는 없었다. 여기에 CRM에 대한 투자의 매력이 있는 것이다. 즉 상대적으로 기반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현재의 상황이 역설적으로는 투자 대비 효과를 더욱 크게 해줄 수 있게 된 것.

기업 내부적인 필요와 더불어 고객들의 요구 역시 CRM 붐을 가져오는 또 하나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위한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고객들의 충성도가 점차 낮아지자 기업에 대한 고객의 기여도를 인정해 주고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통해 고객을 계속 붙잡아두려는 노력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기여와 보상이 고객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기본이자 지속적으로 관계를 이어나가게 하는 요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인터넷의 등장으로 CRM은 더욱 더 요구되는 상황이다. 고객의 선택 폭이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넓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고객은 클릭만 하면 모든 경쟁 상품을 한눈에 파악·비교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곧장 지구 반대편에 있는 경쟁사의 제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인터넷의 등장은 CRM의 탄생에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바로 고객 정보의 소스(source) 및 경로(channel)로서 인터넷의 역할이다. 과거 오프라인 비즈니스에서 고객 정보는 양이나 질적으로 많은 문제를 가져 CRM의 가장 큰 장애 요인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은 사람의 간섭을 최소화하면서 다수의 고객(과거의 동네 고객에서 전 세계 고객으로)으로부터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고객이 의도하지 않았던 정보 수집까지도 가능하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CRM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1:1 마케팅 혹은 마케팅의 개인화(personalization)가 보다 저렴하게 구현될 수 있다. 인터넷의 등장은 대량 고객을 개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술적 도구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해 준다.

전략·프로세스·데이터로서의 CRM

많은 연구기관 및 솔루션 판매자들이 CRM을 정의하고 있는데 크게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 장기적으로 고객에 대한 정의, 선정, 개발, 평가 등을 하는 전략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둘째, 영업, 마케팅, 고객 서비스·지원 등 고객관리 영역의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고 개선하는 프로세스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셋째, 다양한 소스를 통해 고객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의 행동을 분석·예측해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고객 관리에 활용하는 데이터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관점을 묶어 다시 정의하면 ‘다양한 채널 및 소스를 활용한 고객 데이터의 수집과 분석 그리고 이를 고객 관리에서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솔루션’이라 할 수 있다.

채널은 고객이 기업과 만나는 접점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face to face’를 비롯해 최근에 각광받는 인터넷까지 망라된 것이다. 반면 소스(source)는 직접적인 고객 접점이 아니더라도 고객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출처로서 조사 자료나 발표 자료 등을 가리킨다. 또 전략적 활용은 마케팅, 영업, 서비스 관점에서의 폐쇄 루프(Closed Loop)를 구현하는 것이다(그림 참조). 마케팅을 통해 새로운 영업 기회를 창출하고 그것이 다시 실제 매출로 연결되면 구매자는 비로소 고객이 되고 이러한 고객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 및 서비스를 통해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입수되는 고객 정보는 다시 새로운 마케팅의 소스로 활용되는 것이다.

CRM을 솔루션으로 정의하는 것은 위의 세 주요 영역에서 고객 관리 비즈니스 프로세스의 새로운 디자인과 이를 지원하는 정보기술(데이터베이스, 데이터 마이닝 등) 양자 모두가 효과적인 CRM 구현을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CRM시장의 현재 모습은 어떠한가? 그 개념의 포괄성만큼이나 많은 솔루션들이 등장하고 있다. 일단 고객과 기업의 접점 부분에서 상호작용을 지원하기 위해 컴퓨터와 전화를 통합(CTI)하거나 웹과 전화의 통합(WTI)을 지원하는 제품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흔히 말하는 CRM 솔루션은 비즈니스를 지원하는 프런트 엔드(Front-end) 솔루션들이다. Siebel, Oracle, Clarify, Vantive와 같은 대규모 기업을 위한 제품 뿐 아니라 Onyx, Pivotal, Applix, Remedy 같은 중규모 기업을 위한 제품도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또 Customer Intelligence 영역의 제품군은 크게 DBMS와 Mining Tool로 나눌 수 있는데, DBMS로는 Oracle, Sybase, Informix, IBM, NCR 등이, Mining Tool로는 SAS, IBM, SPSS, HNC 등이 있다.

수많은 제품·다양한 방식 혼재 어려움

이상에서 보듯이 CRM 제품군은 그 수가 많을 뿐 아니라 각각의 특장점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과연 어느 제품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사내(In-house) 개발로 할 것인가 등에 대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성공적인 CRM 구현을 위해서는 현재 CRM을 계획하고 있는 회사 혹은 이미 CRM을 시행했던 회사들이 겪는 공통적인 이슈들을 살펴보자. 실제 구축 단계로 들어가면 갑자기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첫째, 무엇보다 CRM 제품을 파는 벤더들의 자의적인 해석이다. 즉, DB업체의 경우 CRM을 DW(Data Warehouse)와 거의 동일시하면서 DW 구축 사례를 CRM 구축 사례로 선전하기 일쑤다. 또 CTI(Computer Telephony Integration) 업체 같은 경우도 역시 CTI가 거의 CRM의 대부분인 것처럼 말한다. ERP 업체의 경우도 CRM을 Post-ERP의 하나로, ERP를 고객쪽으로 좀더 연장한 개념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물론 각각의 제품은 CRM의 성공적 구현에 있어 중요한 기반 기술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CRM이 비즈니스 프로세스와 IT 제품이 결합된 솔루션임을 고려해 볼 때 이러한 정의들은 자칫 비즈니스적인 관점의 결여를 낳거나 IT 영역에 있어서도 불완전한 형태의 모습을 낳기 쉽다.

둘째, 데이터가 없다. CRM을 위해서는 고객 관련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고객에 대해 제대로 모르면서 고객 관계를 관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데이터 관련 문제들은 크게 양적인 것과 질적인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양적인 문제로는 고객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로(channel)와 소스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외부에서 고객 정보를 사는 것도 법으로 엄격히 제한돼 있어 제휴 등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고객 정보를 확보하기 어렵다. 더욱이 본격적으로 고객 정보를 모으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기업의 고객 데이터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양적인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이 질의 문제. CRM을 하는데 필요한 고객 관련 상세 정보, 즉 수입 정보라던가 세대 정보 등의 충실도가 낮아 세련된 활용이 어렵다. CRM의 가장 기본 중의 하나인 고객 평가(valuation)를 위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고객관계 관리가 되겠는가? 예를 들면 신용카드 회사의 한 고객이 가입 신청서에 월 수입을 1백만원이라고 했지만 실제 월 지출은 2백만원인 경우가 태반이다. 이러한 데이터의 양적·질적 문제는 CRM의 성공적 이행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셋째, 활용 방안이 뚜렷하지 않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아무리 고객 데이터가 많이 확보돼 있더라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가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이 관점에서 아직까지 한국의 대부분 기업들은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고객관계를 관리하는 기술이 거의 없다. 이는 곧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마이닝(mining)이 어떻게 존재하겠는가?

넷째, 각 기업별로 자신의 업종에 CRM이 맞는지 확인하지 않는다. 한 의류업체의 경우 전체 매출의 80%가 백화점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입점한 백화점에서는 절대로 고객 정보를 내줄 수 없다고 한다면 이 경우 과연 CRM이 가능할까? 또 다른 제조업체는 대리점을 통해 대부분의 매출을 만들고 있다. 고객과의 접점이나 실질적인 마케팅이 대리점에서 일어나는 이같은 상황에서 본사의 역할은 무엇일까? 산업별 특징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CRM의 적용이 금융이나 통신회사처럼 고객과 직접 접점을 만들며 풍부한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산업 외에도 적용이 타당한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다섯째, 많은 CRM 제품 및 솔루션 가운데 각 기업에게 적합한 것은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현재 CRM에 대한 컨설팅 의뢰는 CRM 전략 수립, 솔루션 선정, 솔루션 이행 등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솔루션 선정이 서비스 유형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CRM 관련 솔루션들이 다양할 뿐 아니라 그 선정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과연 CRM은 일시적 붐으로 끝나고 말 것인가? 그리고 ‘CRM이 옷만 바꾸어 입었을 뿐 과거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는 개념이 아닌가’라는 의문도 든다. 하지만 일단 CRM이 붐이라고 보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 즉, 고객 관계에 대한 중요성은 이미 과거에도 누구나 느끼고 있었던 것이고 때문에 일시적인 관심은 분명 아니라는 것이다.

솔루션 도입보다 전략 수립이 우선

반면 현재 제기되는 CRM은 그 구현의 모습 및 지향점 차원에서 과거에 있었던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 특히 인터넷의 등장에 따라 가능해진 고객 관계의 구축 양상은 과거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느 누가 순간적으로 수백만 명 아니 수천만 명에 이르는 고객에게 맞춤 제안을 하고 개별화된 메일을 보낼 것을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누가 고객이 스스로 (웹 사이트를) 찾아와 전혀 기업 당사자들과 상호작용 없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조용히 나간다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이제 고객은 필드 서비스의 품질이 아니라 웹 상의 Q&A의 충실도 및 최신성에 의거해 기업의 서비스를 평가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고객이 무심코 남겨 놓은 발자국들이 기업의 귀중한 정보 소스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경쟁에서 뒤지기를 원치 않는 기업이라면 한 번쯤 CRM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IT적인 요소가 없어도 된다. 다시 한번 고객에 대해 생각하고 이에 따라 적절한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IT는 기업의 노력 대비 효과를 훨씬 더 크게 해 줄 것이다. 하지만 IT가 프로세스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해준다는 것은, 만약 기본적인 프로세스가 잘못돼 있다면 ‘모든 일이 정확히 잘못되도록, 그것도 무서운 속도로 잘못되도록’ 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IT를 도입하기 전에 정확한 방향 및 전략을 가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만약 여러분의 회사가 CRM을 도입한다면 먼저 IT 솔루션을 찾지 말라. 먼저 전략 수립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어디에서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라. 처음 단계에서의 신중한 고려는 후속 과정에서의 시행 착오를 최소화시켜주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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