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머그잔에 돈 쓰지 말라” … 짠돌이 된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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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연방정부 예산의 20%를 절감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방문객들에게 기념품으로 주던 미국 국세청의 머그잔이나 국토안전부의 기념 셔츠를 구하려면 이젠 수집가들의 손을 빌려야 할 것이다.”

 미 의회 전문지인 ‘힐(Hill)’이 9일(현지시간) 보도한 기사의 한 대목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날 오전 발표한 긴급 행정명령 때문이다.

 재정적자 감축 방안을 놓고 의회와 신경전을 벌여온 오바마 대통령은 연방정부 예산을 20% 절감한다는 목표를 세운 뒤 전 부처와 기관에 45일 안에 실천방안을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오바마는 이 같은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국민이 낸 세금을 꽃다발(swag) 등을 사는 데 쓰지 말라”며 “꼭 필요한 곳에 투자하기 위해 필요하지 않은 지출은 뭐든지 줄여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각 부처나 기관에서 제작해 외부 인사 등에게 제공하던 머그잔이나 만년필 같은 기념품이 우선 감축 대상으로 꼽혔다. 미 정부 관계자는 연방정부의 예산을 20% 절감할 경우 그렇게 해서 모일 돈은 4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목표대로라면 미 연방정부의 지출 규모는 2010 회계연도 수준으로 되돌아간다.

국세청 머그(左), 백악관 셔츠(右)

 구체적인 감축 대상에는 공무원들의 출장·회의 비용, 전자기기 사용 비용, 인쇄물 비용, 관용차량 등이 포함됐다. 부처·기관별로 출장 경비를 감시 감독하는 담당자도 두기로 했다. 또 휴대전화·스마트폰·랩톱·태블릿 등 1인당 지급되는 정보기술(IT) 기기의 숫자를 제한하기로 했다.

 백악관은 “출장이나 회의 관련 예산부터 절감해야 한다”며 “불요불급한 출장은 없애고 가급적이면 전화나 비디오를 통한 회의로 대체하며, 연방정부가 회의를 개최하더라도 정부 건물을 이용하는 등 불필요한 예산을 낭비하지 말라”고 지침을 내렸다.

 미 상무부는 오바마의 지시가 있기 전 등록만 해놓고 쓰지 않는 휴대전화 회선을 조사한 결과 2648회선이나 되는 것으로 밝혀지자 이를 모두 없애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줄여진 돈만 300만 달러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백악관의 한 관계자는 “워싱턴에서 집행되는 관용차량 비용만 연간 900만 달러에 달한다”며 “이번 조치로 절감될 40억 달러는 미 경제를 재건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사회간접자본(SOC) 부문 등에 재투자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부처 내 연간 휴대전화 사용비용을 200만 달러 절감하는 방안을 낸 미 상무부 직원, 구매방식을 변경함으로써 1000만 달러를 절약한 국토안보부 직원 등에게 직접 ‘예산 절감 우수직원상’을 시상했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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