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번째 편지 〈우주를 가로질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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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국도에서 돌아온 다음 날 당신은 다시 열대로 바삐 돌아갔습니다. 그날은 오후부터 장마가 진다더니 오히려 맑은 밤이 계속됐습니다. 오랜만에 아파트 공원 벤치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다 자정이 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별똥별 하나를 목격하고. 불현듯 재작년 11월 17일 사자자리로 유성우가 내리던 밤이 떠오르더군요.

책장 앞을 서성이다 문득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꺼냅니다. 코스모스(Cosmos)는 우주라는 뜻입니다. 또 질서라는 말을 뜻하기도 하죠. 맨 뒷장을 보니 '88에 서울에서 샀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나는 다섯 번쯤 이 책을 통독하고 또 열 번쯤은 줄친 곳을 다시 훍어봤을 겁니다. 사진첩처럼 소중히 보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은 내 영혼을 천둥처럼 흔들어 놓았습니다. 세계와 삶에 대한 인식을 송두리째 뒤바꿔놓았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나의 세계는 한국도 아시아도 지구도 아니고 언제나 우주였습니다.

또 그때부터 나에게 생긴 버릇 중의 하나는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늘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려는 일종의 광기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당시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직업은 비행기 승무원이었습니다. 네, 스튜어디스 말입니다.

나는 언제나 윈도우 시트에 앉습니다. 유럽에 가려면 비행기로 열 시간 이상이 걸립니다. 짧은 거리라면 몰라도 이코노믹 윈도우 시트에 앉으면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닙니다. 그래도 아이처럼 윈도우 시트를 고집합니다. 지평선으로 지는 장대한 저녁 노을과 구름 바다와 아침 해와 또 코발트빛의 밤하늘을 내다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보면 지상에서와 달리 모든 풍경들이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우주의 모습. 그것은 상상을 불허하는 풍경을 갖고 있습니다. 원초적인 죽음과 생명의 세계. 그것이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현장을 보는 일은 그 어떤 경험보다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왔고 언젠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갑니다. 그 눈부신 체계 속으로. 우주는 사람의 몸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비슷한 수의 세포를 가지고 있고 불가사의한 질서 체계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우리는 오늘도 우주에서 만났고 또 헤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우주에서.

"우주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이다. 코스모스란 말에는 우주의 복잡하고도 미묘한 일체성에 대한 외경의 마음이 담겨져 있다."

"우리들의 몸은 알고 있다. 우리가 그 대양(우주)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우주에는 1천억 개 정도의 은하가 있으며 그 각각의 은하에는 평균해서 1천억 개 정도의 별이 있다. 그리고 아마도 모든 은하 속에는 그 별과 같은 수의 행성도 있을 것이다. 그 총 수는 10의 22제곱, 즉 1백억의 1조배쯤 될 것이다."

"인간은 원래 별에서 태어났고, 그리고 지금 잠시 동안 지구라고 불리우는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리는 늘 고향의 별로 돌아갈 기나긴 여정을 떠나고 있다."

"우리는 거대한 우주 공간 속의 조금만 먼지에 불과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들은 영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아주 짧은 한순간만을 살고 가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우주의 광대함 속에 우리들은 얼마나 훌륭한, 눈부신 체계를 가지고 있는가......수많은 태양, 수많은 지구......그리고 그 모두에 풀이 있고 나무가 있으며 동물이 있다. 그것들은 많은 바다나 산으로 장식되어 있다......그곳까지의 머나먼 거리와 많은 항성의 수를 생각하면 우리들의 놀람과 감탄은 얼마나 클 것인가."

"밤이란 커다란 검은 동물의 던져진 껍질."

"하늘은 소중하다. 그것은 우리들을 덮고 있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말을 한다. 우리들이 불을 발견하기 전에는 우리들은 어둠 속에 누워 뒹굴며 빛의 점을 올려다보았다."

"우리들은 밤이 무서워지리만큼 별을 깊이 사랑했다."

"그대는 빛의 속도보다 빠른 속도로 여행하지 말지어다."

"은하는 인간과 비슷하다. 인간의 몸은 1백조 개의 세포로 만들어졌다. 인간의 몸에서는 언제나 합성과 분열이 되풀이되고 있는데 그것은 각각의 부분을 모아놓은 것은 아니다. 은하도 역시 꼭 마찬가지이다."

"힌두교는 우주 자체가 생과 사를 광대하게 무한히 반복한다고 믿은 세계 유일의 위대한 종교였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우연하게도 힌두교의 시간 척도는 현대의 과학적인 우주학의 척도와 일치하고 있다. 힌두교에서는 우주는 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우주 공간의 깊은 곳을 바라본다는 것은 먼 과거를 되돌아보는 셈이다. 제일 가까운 준항성도 아마 5억 광년은 떨어져 있을 것이다. 가장 멀리 있는 준항성은 1백억 광년이나 1백 20억 광년, 아니 그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전파 망원경이 지금까지 수신한 태양계 외부로부터의 전파 에너지 총량은 한 송이의 눈이 지상에 떨어질 때의 에너지보다도 적다."

"만약 4차원의 동물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들 3차원의 세계에 나타났다가 자유자재로 사라질 수 있을 것이며 형태도 뚜렷하게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우주에 들어가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4차원의 물리적 세계를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아마 블랙홀을 통해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 태양 가까이에도 작은 블랙홀이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영원의 끝에 서서 건너뛰어보고 싶어 한다."

"고래는 전지구적인 통신 체계를 이룰 수 있다고 한다. 1만 5천 Km나 떨어져 있어도 연가(戀歌)를 부르면 깊은 해양의 광대한 영역에 활기차게 퍼져 나간다."

"우리들이 우주 비행에 대해 그토록 흥미를 갖는 것은 그것에 의해 우리들이 죽음을 초월할 영원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일까."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어건은 우주 과학을 텔레비전을 통해 전인류에게 대중화시킨 사람입니다. 그는 한편 외계인과의 접촉을 시도하는 〈콘택트〉란 소설을 써서 영화화되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조디 포스퍼의 연기는 매우 돋보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 둘뿐이라면 우주는 너무 많은 공간은 낭비하고 있는 거겠죠."
"우주의 공통 언어는 수학입니다."

고등학교 때 수학을 아주 잘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정도냐면 그는 수학 공식을 가지고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가 별과 우주에 대해서도 뭔가 잘 알고 있었을 거라고 아직도 생각합니다. 벙어리처럼 말이 없던 친구였습니다.

지금은 강원도에서 대학 선생을 하고 있는 내 막내삼촌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눈으로 푸는 사람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천재였던 것입니다.

고3 때 어느 날 그는 햇빛이 창창한 운동장을 혼자 가로질러 가다 신이 내리듯 우주의 섭리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후 오랫동안 입을 다물고 살다가 군대에 가서야 비로소 말문이 트였다고 합니다. 그는 또 오랫동안 마음을 닫고 사는데 쉰 살이 돼서야 속초-서울 간 비행기에서 만난 어떤 독신의 여자와 느닷없이 결혼을 하고 나서 겨우 마음을 열게 됩니다.

그가 고3 때 햇빛이 무더위로 내리는 운동장에서 보았던 것은 세계의 광대함과 무상함이었을 것입니다. 또 이루 말할 수 없이 광막한 외로움이었을 것입니다. 결코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고독함 속에서 그는 무려 삼십 년을 우주에서 길을 잃고 혼자 헤맸던 것입니다. 자신이 곧 하나의 우주이며 사랑하는 이가 또한 하나의 전체라는 걸 깨달을 때까지 말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만납니다. 무한 광대하고 광막한 세계의 외로움 속에서. 그 견딜 수 없는 밤의 푸르른 황홀 속에서. 수많은 별들 중의 하나로. 마침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별똥별이 되어 지상으로 곤두박질치며 말입니다.

비행기 타고 열대로 잘 가셨는지요. 내 삶에 있어서 처음 비행기가 나를 내려준 곳은 사막이었고 두번째는 열대였습니다. 그곳이 가까운 곳이라는 걸 알게 될 때까지 참으로 오래 기다려야 했습니다. 나 역시 약 삼십 년쯤. 그리고 한 존재에게 가기까지 나는 몇 개의 웜홀을 빛과 같은 속도로 통과했는지 모릅니다.

타인(남자)과 타인(여자)이 만나는 일은 빛과 같은 속도로 은하를 몇 개나 건너야 비로소 가능한 일입니다. 모두가 각자 하나의 우주이며 전체이기 때문입니다.

수평선 너머 별들이 질 때 다시 내게로 오시겠죠. 오는 동안 보았던 그 숱한 우주의 황홀을 다시 내게 들려주시겠지요. 당신은 열대 비행기 승무원이므로.

새벽 3시. 이제 그만 잠자리에 들어야겠습니다. 비틀스의 〈Across The Universe〉를 들으며 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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