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갈등 달래려 퍼주기 예산” 이탈리아 나랏빚 1초에 155만원씩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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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탈리아 국가 부채는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올 8월 말 현재 약 3000조원(1조9000여억 유로), 국내 금융인들이 ‘3000조국(國)’이라고 부를 정도다. 규모도 규모지만 속도가 더 문제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이탈리아 국가 부채는 초당 1000유로(155만원)씩 불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은 “심각한 상황에 비춰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사의 표명은 너무 느슨한 반응”이라고 평가했다. 경제개혁법 통과 같은 전제 조건 없이 물러났어야 한다는 얘기다. 가이트너가 외국 정상의 거취에 대해 이처럼 직설적으로 말한 적은 없었다. 이탈리아 구제금융 사태가 그만큼 파괴적이라는 방증이다.

 이탈리아 출신인 ‘닥터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경제학)는 “그리스 위기가 유로존 국경에서 벌어진 작은 충돌이라면 이탈리아 사태는 유로존 중심부가 공격당한 사건과 같다”고 말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경제학) 등은 이탈리아 위기가 세 가지 측면에서 세계 경제에 치명적이라고 지적했다.

첫째, 부채 규모가 ‘너무 커 구제불가(Too big to rescue)’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지난해 보고서는 “고질적인 세금탈루(지하경제가 GDP 대비 23%로 OECD 회원국 최대)와 지역 갈등을 달래기 위한 선심성 예산 편성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했다. 이탈리아는 1994년 공격적인 재정 개혁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성공했다. 공공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24%에서 100% 선으로 줄었다. 덕분에 유로존 가입이 가능했다. 하지만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금융회사 구제 작전과 경기침체에 따른 세수 감소 때문에 빚이 가파르게 늘어났다.

 둘째, 프랑스·독일·영국·미국 은행들이 이탈리아 국채를 대거 보유하고 있다. 해외 은행 소유 비율이 그리스보다 월등히 높다. 위기 전염이 곧바로 글로벌화할 수밖에 없다.

셋째, 정당이 난립해 정치적 리더십이 취약하다. 연립정부가 불가피하다. 그런 만큼 재정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하기 힘들다. 위기가 가시화해도 이를 막거나 진화할 수단이 사실상 없다는 얘기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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