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천무〉준광역 정진영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약속〉에서 충직한 부하로 나와 대종상 조연상을 수상했던 정진영(37)은 〈비천무〉에서도 의리와 우정을 섬기는 준광 역을 맡았다.

시사회장에서 "이번 영화는 돈을 많이 들인 영화로 알려져 있지만 '공을 많이 들인 영화' 로 봐 줬으면 좋겠다" 며 애정을 보인 그는 인터뷰에서도 "요즘 영화답지 않게 작품이 묵직해서 좋다" 며 흡족함을 표했다.

그러나 정씨야 말로 '요즘 배우답지 않게 묵직한 배우' 라고 할 만하다. 헤헤거리며 관객에게 아첨이나 하려드는 배우, 사람 좋은 척 온화한 미소를 만들며 공격성을 거세한 배우, 속으로는 현실에서 이득을 취하려는 영악한 계산에 빠져있으면서도 가당찮게 반항아의 제스처를 취하는 '가짜' 들이 설치는 판에서 그나마 '실존' 의 향내를 풍기는 드문 연기자에 속한다.

그는 "준광이라는 인물의 성격이 꽤 복합적인데 디테일한 면에서 연기가 받치지 못해 그런 내면이 살지 못한 게 아쉽다" 며 말문을 열었다.

- 캐릭터가 고정돼 있어 불만스럽지 않나.

" 〈약속〉에서의 캐릭터가 내 이미지로 각인돼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 난 여성적이다. 누나가 다섯이나 있는 집안 환경에서 자란 탓인 것 같다. 배우라면 늘 새로운 역을 맡고 싶은 법이다. 여성적이고 감성적인 역도 하고 싶다. 하지만 요즘 충무로 분위기에서는 모험을 하기보다는 이전의 이미지를 업고 가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새로운 역을 맡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

- 충무로에 배우가 없다는 말이 많은데.

"아니다. 배우는 많다. 그러나 투자를 받기 위해 몇몇 스타에 의존하다보니 배우를 키우지 못하는 것이다. 설경구 같은 배우가 많이 나와야 한다. 적은 제작비로 서울에서 10만, 20만명만 들어도 되는 영화가 많아야 배우가 키워진다. 관객들도 다양한 얼굴과 연기를 만날 수 있어야 좋은 게 아니겠는가. "

- 〈초록물고기〉에서 연출부 생활도 한 적이 있는데 감독 꿈은 접었나.

"현재로서는 연기를 계속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있다. 사실 〈초록물고기〉이후 시나리오를 쓰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 내가 세상을 너무 모르고 세상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거엔 배우는 한석규처럼 돼야하고 감독이라면 임권택 감독 정도는 돼야한다며 일류의식에 시달렸다. 그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평범하고 소박한 삶이 소중하게 보이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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