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얀 우습게 보던, 콧대 높은 ‘데카 사운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연주자-프로듀서의 명콤비로 역사에 남은 지휘자 게오르그 솔티(왼쪽)와 프로듀서 존 컬셔.

유명한 일화 하나. 1950년대 말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음반사 데카의 런던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외투를 벗어 신참 엔지니어에게 건넸으나, 그 옷은 바닥에 떨어졌다. 엔지니어가 카라얀을 무시한 채 스튜디오로 빠르게 들어가버렸기 때문. 음악계를 호령하던 지휘자마저 작아지던 데카 기술자들의 콧대를 보여주는 사례로 전해 내려온다.

 요즘 음반의 주인공은 연주자다. 하지만 1950~70년대엔 장막 뒤 기술자들의 힘이 셌다. 이달 나온 음반 박스 ‘더 데카 사운드’는 그 상징이다. 피아노 반주자로 음반 데뷔했던 게오르그 솔티(1912~97)를 힘있는 지휘자로 키워낸 것도 데카 기술진의 안목이었다. 당시 신예에 불과했던 솔티는 데카의 전폭적 지지로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시리즈 전곡을 녹음한 후 거장으로 성장했다. 음반사(史)의 전설적 프로듀서인 존 컬셔의 안목 덕분이었다. 당시 프로듀서들은 연주의 빠르기 등 음악적 해석에 관여했을 정도로 권한이 막강했다. 컬셔 이후로 앤드류 코널·레이 민슐 등 스타 프로듀서가 잇따라 탄생했다.

 80년대 이후 음반업계 전체가 흔들렸다. 음반 회사들의 합병이 시작됐고, 프로듀서·엔지니어들의 영역이 위축됐다. 또 녹음 자체보다 편집이 중요해지며 녹음 기술자들의 전성기도 저물었다. 음반사별로 독특했던 사운드도 이제 엇비슷해졌다. 40~60년 전 고유명사였던 ‘데카 사운드’가 역사 속에 남게 된 배경이다. 쟁쟁한 기술진들의 이름이 새겨진 음반 50장의 ‘더 데카 사운드’에는 이 같은 음반의 역사가 담겨있다.

김호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