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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vs 도쿄 지하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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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서승욱
도쿄 특파원

도쿄에서 산다는 건 ‘지하철이나 전철을 타고 다닌다’와 같은 이야기다. 그만큼 철도 의존도가 높다. “무리한 승차를 자제해 달라”는 경고가 반복되는 ‘만원 지하철’로 하루가 시작되고, 말수 적은 도쿄 아저씨들까지 수다스럽게 변하는 술기운 가득한 퇴근 지하철에서 하루가 끝난다.

 출퇴근 길에만 왕복 640엔(약 9600원)을 내다버리지만, 기본요금만 710엔(1만650원)에 웬만하면 3000엔(4만5000원)이 넘어가는 살인적인 도쿄 택시 요금에 비하면 그나마 양반이다.

 서울의 지하철 속 풍경과 가장 다른 건 뭔가를 읽지 않으면 못 견디겠다는 듯한 일본인들의 독서열기다. 독서 강국인 일본의 언론들은 “국민이 점점 인쇄 매체를 멀리하게 돼 큰일”이라고 연일 호들갑이지만, 부임 2개월 된 초보 특파원의 피부엔 잘 와 닿지 않는 이야기다. 단행본, 만화, 잡지, 신문, 외국어 학습지에다 심지어 회사에 낼 보고서 뭉치까지…. 지하철 안은 작은 도서관이다. 가죽이나 헝겊으로 만든 커버로 문고판 책 표지를 가리고 독서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의 숫자가 휴대전화로 인터넷을 즐기는 서울 지하철의 승객 수만큼이나 된다는 게 신기했다. 발 디딜 틈도 없이 비좁은 지하철 안에서, 본인도 몸을 웅크려 서 있는 처지에 문고판 책을 악착같이 읽어대는 사람들이 얄미워 뒤통수를 한 대 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반면 일본 지하철의 약점은 허약한 ‘인터넷 인프라’ ‘휴대전화 인프라’다. 지상으로 다니는 일부 전철을 제외하면, 지하철에서 인터넷 연결은커녕 통화조차 어려울 때가 많다. 프로야구 골수팬인 기자에게 도쿄 지하철은 악몽이었다. 얼마 전 삼성의 우승으로 끝난 한국 시리즈를 귀가 길마다 휴대전화로 지켜봤는데, 지하철역 승강장에선 멀쩡하다 지하철이 출발하면 완전히 멈춰버리는 동영상 때문에 숱한 명장면을 모두 놓쳐버렸다.

 지하철 내 풍경은 그 나라의 경쟁력과 국민성을 드러낸다. 도쿄 지하철 속 일본인들의 독서열이 일본을 지탱하는 힘이라면, 인터넷이 자유로운 서울 지하철 풍경은 ‘IT와 인터넷 강국 한국’을 웅변한다. 일본의 우익 신문들과 악의적 네티즌이 한국의 IT를 아무리 흠집 내도 양국의 인터넷 수준 차는 지하철 속에서 이미 승부가 갈려 있는 것이다.

 최근 일본 요미우리신문엔 “여론조사를 해 보니 한 달에 책 한 권을 읽지 않는 성인이 절반이나 돼 걱정”이란 기사가 실렸다. 한 달에 한 권은커녕 국민 35%가 1년에 책 한 권을 읽지 않는다는 우리 입장에선 배부른 고민이다. 이 참에 우리가 독서량을 폭발적으로 늘려보는 건 어떨까. 인터넷뿐 아니라 읽기 문화에서도 일본을 한번 이겨보는 것 말이다. 지하철 속 한·일전도 질 수 없는 한·일전이니까.

서승욱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