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으로 잠 못 이루는 밤, 당뇨환자 괴롭히는 신경병증 통증 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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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길내과의원 내분비대사분과 전문의 윤태승

사람이 70세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평생 잠자는 데 보내는 시간은 약 28년 정도라 한다. 평생 3분의 1이 넘는 시간을 잠 자면서 보내는 것이다. 간혹 얼굴빛이 좋지 않거나 피곤해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으레 ‘간밤에 잠 설쳤냐’고 물어보기 마련이다. 본인 스스로도 몸이 찌뿌드한 날에는 자연스럽게 ‘어제 밤에 잠을 잘 못자서’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처럼 잠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자 건강의 바로미터다. 따라서 잠을 잘 자지 못하면 병에 걸리고, 병에 걸리면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악순환이 현실에서는 반복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잠 못 드는 고통이 한 달 혹은 일년 넘게 간헐적으로 지속된다고 상상해보자.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직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당뇨병성 신경병증 환자들도 통증으로 인해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는 경우를 외래에선 흔히 보게 된다.

당뇨병성 신경병증 통증은 대표적인 당뇨합병증이다. 당뇨병 환자 3명 중 1명에게 발병하며 발이나 다리에 쑤시거나 불에 덴 듯한 통증, 신문지를 깔아 놓은 듯한 감각이상 등이 주요 증상이다. 당 수치가 올라가면서 말초나 중추 신경이 손상되어 증상이 나타 나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밤에 통증이 더 심해지는 특성이 있어 이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는 밤은 고통 그 자체다. 실제로 대한당뇨병학회의 조사에 따르면 당뇨병성 신경병증 통증 환자들에게 수면의 질을 100점 척도로 물어봤을 때 ‘충분히 많이 잠을 잤다’고 느끼는 경우는 32.69점, ‘일어 났을 때 잘 쉬었다’고 느끼는 경우는 38.27점에 불과했다.

더 심각한 것은 단순한 잠의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수면방해가 환자의 삶의 질을 전반적으로 떨어뜨린다는데 있다. 100점 척도로 삶의 질을 평가했을 때 일반 당뇨병 환자들이 74.29점으로 답한 반면, 당뇨병성 신경병증 통증 환자들의 점수는 67.65점에 머물렀다. 일반인의 평균 점수가 90점인 것과 비교했을 때 그 격차는 더 벌어진다. 또한 당뇨병성 신경병증 통증으로 인한 수면방해는 도미노가 무너지듯 우울, 불안증상을 동반한 2차적인 질환들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뇨병성 신경병증은 발병 초기 적극적인 통증관리와 수면방해 개선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당뇨 환자들을 대하는 전문의로서 늘 아쉬운 점은 대다수의 환자들이 이 병에 대해 아직 잘 몰라 관리와 치료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합병증이 많은 당뇨병의 특성상 질환 초기의 저리는 느낌이나 가벼운 통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냥 넘기는 환자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통증이 심해져 참기 힘들 때가 되면 이제서야 부랴부랴 병원에 와서 통증만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문의하는 경우가 많다.

당뇨병성 신경병증의 이상감각, 통증, 그리고 통증에 의한 수면방해도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 발이나 다리에 저린 감이나 가벼운 통증이 있다면 즉시 주치의에게 알리고 이에 대한 검사와 치료를 받아야 한다. 검사는 설문지 조사와 모노필라멘트 등을 이용한 감각 검사로 외래에서도 간편하게 받을 수 있으며, 좀 더 정밀한 검사가 필요한 경우에는 신경전도속도검사를 시행 하기도 한다. 약물 치료로는 크게 병인적 치료와, 증상 완화 치료로 나뉜다. 병인적인 치료는 활성 산소에 의한 신경손상을 막는 항산화제 약물을 주로 사용하고, 증상 조절을 위해서는 최근, 통증을 빠르게 진정 시키고 수면방해 개선 효과가 있는 프레가발린(상품명: 리리카) 약제가 있어 외래에서도 신속히 증상 완화 치료 효과를 기대 할 수 있다. 더불어 이 약제는 간 대사를 거의 거치지 않아 여러 약을 복용하는 당뇨 환자나 고령환자에서도 비교적 안전하게 사용 할 수 있다.

당뇨병성 신경병증 통증은 보통 당뇨병을 앓은 지 5~10년 차 환자에서 많이 발병하는데, 25년 이상된 당뇨병 환자의 경우에는 절반 이상이 당뇨병성 신경병증 통증을 앓는다. 그만큼 65세 이상 고령의 당뇨병 환자들에게서 많이 발병한다는 뜻이다. 젊은 세대들은 의심증상이 있을 때 스스로 찾아보고 내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서 상대적으로 고령 환자들은 자각이 늦고 방치하는 경우가 많아 유병율이 높을 수 밖에 없다. 풍경 아름다운 가을을 지나 밤이 길어지는 겨울이 다가 오는 지금, 혹시 부모님이나 주변 어르신들이 당뇨병성 신경병증 통증으로 힘든 밤을 보내고 있진 않으신지 더욱 더 관심 있게 살펴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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