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까맣게 지워진 신문지 덩그러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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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5일 대구시 수성구 중동 갤러리 아소에서 최병소(오른쪽) 작가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시커먼 작품이 천정에 매달려 바닥까지 늘어뜨려져 있다. 82㎡(25평) 갤러리엔 이 한 점이 전부다.

 대구시 수성구 중동에 있는 갤러리 아소가 이달 30일까지 최병소 전을 열고 있다.

 작가 최병소(68)는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현대미술 활동을 하는 토박이다. 지난해 이인성미술상을 받으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폭 80㎝에 길이 8m인 작품은 신문용지가 소재다. 작가는 신문지를 캔버스 삼아 두 달 넘게 연필과 볼펜으로 빈 틈없이 새까맣게 칠했다. 그래서 작품은 흑연 덩어리, 검은 쇠붙이처럼 온통 시커멓고 군데 군데 찢겨져 있다. 관람객들은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는 신문지와 연필·볼펜을 고집한다. 이번 전시작은 인쇄하지 않은 용지가 사용됐지만 보통은 인쇄된 신문을 사용한다. 작가는 “연필과 볼펜으로 한결같이 번잡한 세상 소식이 인쇄된 신문을 말끔히 지우는 작업을 한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며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작업은 단순할지 모르지만 그는 예사롭지 않다. 작가는 1997년 파리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프랑스 컬렉터는 그의 안목을 일찌기 꿰뚫어 보고 전용 미술관 건립까지 추진했다. 컬렉터가 불의의 사고로 죽은 뒤 자녀들은 파리에 ‘최병소미술관’인 IBU미술관을 지었다. 2005년 개인전에 이어 현재는 그의 작품이 파리에 상설 전시되고 있다.

 최병소는 그리고 칠하는 대신 지우는 미술을 시작해 현대미술의 지평을 넓혔다. 화선지·물감 대신 평범한 신문지와 연필·볼펜으로 화구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그의 작품은 지금 이인성미술상 수상을 기념해 13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도 전시되고 있다. 문의 018-217-4480.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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