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시설 모인 서구 “소음·악취 보상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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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선철도·구마고속도로·위생처리장·음식물쓰레기자원화시설….

 대구시 서구 상리동 속칭 가르뱅이 마을을 둘러싼 시설이다. 서구의 서쪽 끝인 이 마을에는 365가구에 1200여 명이 살고 있다. 김외준(58)씨는 “주민들이 소음과 악취로 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며 대책을 요구했다.

 서구 주민들이 대구시를 압박하고 나섰다. 개발이 지지부진한 서구를 살릴 방안을 마련해 다른 지역과 불균형을 해소하라는 것이다. 대구지역균형발전연구원 백승정(59) 원장 등 주민 대표는 지난 2일 대구시의회를 방문해 서구지역 주민 지원조례 제정을 촉구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앞서 1일에는 대구시 진용환 환경녹지국장을 만나 같은 요구사항을 전했다. 30여 년 전부터 들어선 각종 혐오시설 탓에 대구의 낙후지역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백 원장은 “빈약한 구청 재정으로는 지역개발사업을 할 수 없다”며 “재원 마련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나선 것은 음식물쓰레기처리장 때문이다. 시는 음식물쓰레기 폐수를 내년부터 바다에 버릴 수 없게 되자 상리동에 하루 300t을 처리할 수 있는 음식물쓰레기자원화시설을 건립하고 있다. 이 시설은 내년 8월 완공 예정이다. 주민들은 위생처리장(분뇨처리장)에 이어 혐오시설을 다시 서구에 짓고 있다며 반발한다. 지역 내 염색공단과 공단 내 열병합발전소도 혐오시설로 꼽는다.

 주민들은 서구 주민을 위한 지원조례의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분뇨와 음식물쓰레기 처리비용의 10%(연 50억∼60억원)를 서구에 지원하라는 것. 주민들은 이를 지역 개발이나 주민 복지에 쓰겠다는 구상이다.

 대구시는 어렵다는 쪽이다. 우선 법률적인 근거가 없다는 점을 든다. 폐기물처리시설 설치 촉진 및 주변지역 지원 등에 관한 법률에 음식물쓰레기처리장 주변 주민을 지원하는 규정은 없다는 것이다. 전례 역시 없을 뿐 아니라 분뇨처리장은 달서구에도 있는 만큼 서구에만 지원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시는 음식물쓰레기자원화시설을 위생처리장과 함께 지하에 건설 중이어서 공사가 끝나면 오히려 악취가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구시 윤종석 자원순환과장은 “상리동의 경부선 철도변에 방음벽을 만들고 도시가스시설도 무상 설치하는 등 주민생활 환경 개선에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백 원장은 “울산시는 음식물자원화시설 주변 주민 지원조례를 이미 만들었다”며 “시에서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경우 주민 서명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홍권삼 기자

◆혐오시설=쓰레기매립장·쓰레기소각장·위생처리장 등 악취나 매연·분진 등을 배출해 생활에 불편을 초래하는 시설을 말한다. 법률상 용어는 아니다.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은 쓰레기매립장과 소각장의 경우 처리 수수료의 10% 범위에서 주민 지원기금을 마련토록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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