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만화에서 싸움터로 그려지는 학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만화 독자층이 넓어졌다고 해도 아직까지 만화의 주독자층은 10~20대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많은 만화가들이 이들의 구미에 맞는 만화를 그려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학생들의 일상과 비슷하면서 전혀 다른 모습의 학교 생활을 그림으로써 이들의 욕구불만을 해소하려는 만화들이 범람하고 있다. 이른 바 학교를 싸움터로 그린 폭력(?)만화들이 그것이다.

이런 종류의 학원 폭력물이 범죄를 가증시킨 원인이 되기도 했고 이 때문에 만화 전체가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학원 폭력물의 기원을 어느 만화에 둬야할지는 명확하지 않다. 지금 머리속에 떠도는 것만 나열해봐도 〈천상천하〉 〈사키가케 남자 학원〉 〈파렴치 학교〉 〈낙오자 블루스〉 〈상남 순애죠〉 〈GTO〉 〈공태랑이 나가신다〉 〈엔젤전설〉 〈캠퍼스 파이터〉 〈멋지다 마사루〉(?) 〈인간병기 카츠오〉 〈오늘부터 우리는〉 〈크레이지 보이〉등 일본 것만도 대단히 많다.
우리나라 만화라면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 〈진짜 사나이〉 〈캡〉 〈짱〉 〈삐삐쳐〉 〈닥쳐〉 등등 많이 있다.

〈영건〉과 같은 대만 만화도 학원 폭력물에 속한다. 순정물도 그런 만화가 많아서 〈사립 시라이소고교 학생회 집행부〉,〈도쿄 크레이지 파라다이스〉 같은 것들은 순정학원 폭력물로 분류된다.

주인공이 친구들과 끝도 없이 싸우고 싸우는 이런 류의 만화 중에서도 그래도 권할(?)만한 책이 있다면 〈천상천하〉와 〈사키가케 남자 학원〉, 그리고 〈GTO〉 정도.

〈천상천하〉는 요즘 뜨고 있는 작가 '오! 그레이트'의 작품이다. 원래 이름이 있었고 그 앞에 '오! 그레이트'라고 붙여놓은 것이었는데, 우리 나라에 번역되면서 작가명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단편만을 그려왔는데, 〈천상천하〉는 그의 첫 장편. 우리나라에는 단편 〈히미코전〉에 이어서 두번째로 소개된 만화다.

줄거리는 교내 최강자 집단인 '집행부'와 그 집행부에 대항하는 '유검부'의 싸움이야기. 신입생 나기와 보브는 학교에 들어오자마자 학교의 짱이 되기 위해 싸움을 시작하지만 그들보다 강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상심하던 차에, 보브의 여자친구가 집행부의 간부에게 겁탈을 당한다. 나기와 보브는 더욱 강해지기 위해 집행부에 대항하고 있던 유검부에 입부하고 타카야나기, 미야, 아야와 함께 집행부와 싸우게 된다. 조금씩 마야&아야의 과거도 드러나고, 왜 유검부는 집행부와 싸우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하면서 스토리는 급류는 타는데... 아직 완결이 되지 않은 작품이므로 앞으로 진행이 기대된다.

그러면 왜 이 작품이 인기를 끌고 있을까? 그것은 바로 '오!그레이트'라는 작가가 갖는 독특한 그림체와 이야기 진행방식에 있다. 이 만화는 특히 남성독자들에게 인기가 높은데, 그 이유는 '오! 그레이트'의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듯이 히로인이 강하고 글래머이기 때문. 때리고 부수는 것이 전부인 학원물이 아닌 여성을 등장시켜서 더욱 관심을 유발시키는 것이 묘미라면 묘미다.

〈천상천하〉가 히로인도 있고, 싸움 외의 요소도 꽤 많은 학원 폭력물이라고 한다면, 〈사키가케 남자 학원〉은 정통 학원 폭력물이라 할 수 있다.

〈사키가케 남자 학원〉은 우리나라에 정식 번역판이 나오지 않았고 해적판으로 〈캠퍼스 군단〉 혹은 〈영웅문〉이라는 제목으로 많이 나돌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만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싸우다 끝나버린다. 이야기는 주인공인 츠루기 모모타로우가 최강의 남자를 만든다는 '남자학원'이라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된다. 이 이 만화를 (꽤나 긴데) 3등분하면 모모타로우가 2학년, 3학년들을 물리치고 학교 대표가 되는 것이 전반부, '남자학원'의 대표들이 '전세계 격투기 대회'에 나가서 그 대회의 주최자이자 교장의 원수를 죽이는 것이 중반부, 그 원수가 되살아나서 다시 물리치러 가는 것이 종반부이다.

80년도 중반, 소년 점프에 연재된 이 만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뭘까? '남자 학원'의 존재나 싸우는 모양이나, 전세계 격투기 대회나 죽여도 죽지 않는 등장인물(사실 전교생 한번씩 다 죽었다 되살아났다)이나 비현실적인 것들뿐인데도, 이 만화는 1990년 소년 점프가 뽑은 7대 만화에 뽑혔다.(드래곤볼이나, 죠죠의 기묘한 모험과 같은 장기 연재작품 7편이었다.)

소년 점프를 사보면(일본 것), '우정, 용기, 희망'이라고 적힌 것을 볼 수 있다. 소년 점프가 추구하는 만화의 지표같은 것이다. 게다가 그런 만화가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이 〈사키가케 남자 학원〉은 딱 들어맞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서로를 극한으로 몰고가는 싸움이 끝난 후에 학년에 관계없이 싹트는 우정. 죽을지 모르는데도 거의 무모함에 가까운 의지를 보여주는 용기, 이젠 끝장이라는 장면에서 살짝 드러나는 희망 등이 바로 이 작품의 진수라 하겠다.

그렇다고 심각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교장이라던가, 깃발지기 같은 재미있는 캐릭터를 곳곳에 등장시키면서 긴장완화를 하면서 웃으면서 볼 수 있는 만화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GTO〉.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바로 〈반항하지마〉이다. 〈상남 2인조〉(원재는 상남 순애죠)의 주인공 중 한명인 영길이가 교사가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는 만화이다.

〈상남 2인조〉에서 상남 지역의 짱이된 폭탄 용이와 악귀 영길. 이 귀폭콤비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각자의 길을 걷는데, 용이는 오토바이점을 운영하고, 영길이는 대학에 진학한 후 교사가 되기로 맘먹는다.

어렵사리 사립고교의 교사가 된 영길이지만 전교에서 가장 문제아들만 모인 반의 담임이 되어 왕따 학생을 구제해주랴, 선생님 괴롭히기를 극복하랴, 보통 선생님 이상의 역할을 한다. 게다가 동료 교사의 질투를 받으면서도 동월 선생을 사랑한다고 정말 바쁜 생활을 하고 지낸다.

〈상남 2인조〉라는 만화가 남자 아이들만을 위한 만화였다고 하면 〈GTO〉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인기가 있다. 게다가 학생과 교사의 관계를 그린 만화가 되어서 선생님들 사이에도 인기가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요즘의 학교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이지메, 왕따 현상이나, 질 낮은 교사 문제나, 학생 범죄 문제 등 주 독자층인 학생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문제를 주제로 삼고 있다는 점이 인기를 끈 이유라고 본다.

이지메 때문에 등교를 거부하는 학생수가 일본에서는 1만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게다가 학생을 폭행하는 교사나 학생에게 무관심한 교사의 수도 증가했고 살인 사건이나 인질극 등 학생이 저지르는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지금, 영길과 같은 선생님의 출현은 초현실적인 희망이 아닐까.
그것이 이 만화를 대 히트로 이끈 힘이라고 하겠다.

폭력만화라고해서 모두 거부할 것은 아니다. 어떤 만화든 어딘가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스트레스 해소나 대리 만족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