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웃의 검투사 - 러셀 크로우(Russell Crowe)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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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목숨이 오락거리로 전락했던 시절을 다룬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신작〈글라디에이터(Gladiator)〉는 '스필버그'가 이끄는 드림웍스가 야심차게 준비한 전형적인 대형 블록버스터다.

영화의 무대는 AD 180년. 황제의 신임을 독차지하던 로마의 장군 '막시무스'는 왕자 '코모두스'('호와킨 피닉스'-그는 아깝게 요절한 '리버 피닉스'의 동생이다.)의 음모에 휘말린다. 가족들은 처참하게 몰살당하고 자신은 노예로 팔려가게 된 것. 이후 글라디에이터(검투사) 훈련을 받게 되는 '막시무스'는 '코모두스'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최고의 글라디에이터로 성장해간다.

당대 최고의 비주얼 리스트인 '리들리 스콧' 감독과 '한스 짐머'의 웅장한 음악, 제작비 1억 달러(1억 5천만 달러라는 설도 있다.), 잉글랜드, 말타, 모로코 등지에서 촬영한 스펙터클한 화면, 그리고 박진감 넘치는 대형 전투신으로 무장한 〈글라디에이터〉는 여러모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뿐만 아니라 사실적인 화면을 위해 2만 8000여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했으며 말타의 거대한 원형 경기장과 로마시대의 광장을 재현했다.(2층 높이까지 실제 세트로 짓고 나머지 2층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합성해 실물 크기의 원형 경기장을 보여주는 등 테크놀러지의 역할도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영화가 제작되진 않는다.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필요하다. '막스무스'의 강렬함을 연기할 만한 배우, 바로 '러셀 크로우'(Russell Crowe).

〈LA 컨피덴셜(L.A Confidential)〉과 〈인사이더(Insider, The)〉를 통해 국내에서도 만만치 않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러셀 크로우'. 호주 촌놈에서 이제는 '멜 깁슨'을 위협할 만한 상대로 성장한 그는 1964년 4월 7일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TV와 영화를 오가며 세트담당 일을 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영화와 텔레비전과 친숙해질 수 있었다. 6살 땐 이미 호주의 TV 시리즈〈Spy force〉로 데뷔하는 영특함을 보였으며 80년대 중반 친구들과 함께 밴드를 조직해 음악에 심취하기도 했다.

연극을 통해 기본기를 다진 후〈Blood Oath〉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영화배우로서의 탄탄대로. 호주 영화제에 3년 연속 노미네이트 되고 남우조연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호주에선 더 이상 대적할만한 배우가 없었다. 그에게 남은 일은 헐리웃을 평정하는 일 뿐. 마침 기회가 찾아왔다. 비록 비평과 흥행에서 참패한 영화 '샘 레이미' 감독의〈퀵 앤 데드〉가 헐리웃의 첫 진출작이긴 했지만 많은 헐리웃 관계자들에게 확실히 눈 도장을 찍을 수 있었다.

'헐리웃 느와르의 결정판'이란 평가를 받으며 평론가들을 열광시켰던 '커티스 핸슨' 감독의 〈L.A 컨피덴셜〉은 '러셀 크로우'를 확실히 '띄운' 영화다. 화를 참지 못하고 피의자를 구타하기도 하지만 사랑에 진실하고 동료에게 충실한 열혈 형사로 등장, 특유의 삶에 지친 고단한 모습과 저음의 목소리를 앞세워 일순간에 영화 팬들을 사로잡았다.

주로 '싸나이'에 관련된 힘있는 영화를 만들어온 '마이클 만' 감독의 〈인사이더〉는 그의 매력을 단적으로 보여줬던 작품. 이 영화는 절대권력과도 같은 자본주의 앞에 개인의 존엄성과 언론의 자유가 얼마나 무력한가를 담아낸 작품으로 19개월째 재판이 진행중인 실화를 소재로 삼았다.

주인공은 거대한 담배회사에 맞서는 과학자와 방송국 PD. 신경에 안 좋은 치명적인 성분으로 담배를 만드는 회사에 반기를 들다 '의사소통 장애'라는 이유로 해고된 '인사이더'(내부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 '제프리 와이갠드' 박사(러셀 크로우)는 방송국 PD '로월 버그만'(알 파치노)의 간곡한 부탁으로 엄청난 개인적 피해를 감수하면서 CBS의 시사 대담프로에 출연한다. 하지만 방송국은 담배회사가 걸어올 소송이 두려워 방송을 포기한다. 낙담한 '제프리'의 비난과 회사의 압력 속에 '로월'은 이길 확률이 제로에 가까운 담배회사와 CBS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 '제프리'와 '로월'의 투쟁으로 미국의 3대 담배회사가 2천 4백 60억 달러라는 사상 초유의 거금을 배상하게 된 사실을 자막으로 처리한 〈인사이더〉는 결국 진실과 정의가 승리하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이 작품으로 '러셀 크로우'는 오스카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거친 행동과 꺼릴 것 없는 말투로 늘 헐리웃의 변방에만 머물 것 같았던 '러셀 크로우'. 이제는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와 '실베스타 스탤론', 그리고 '멜 깁슨'과 '브루스 윌리스' 이후 액션스타의 부재로 허덕이던 헐리웃의 새로운 보물이 되었다.

"헐리웃 배우들은 대부분 자신이 아름답게 보이는데 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돈과 명성은 내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관객과 함께 하는 여행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젊은 말론 브란도'라 불리는 '러셀 크로우'가 들여주는 자신만의 연기관이다.

※필자 조은성씨는 영화 〈내일로 흐르는 강〉조감독, EBS 교육방송 〈시네마 천국〉구성작가를 거쳐 나우누리 영화 동호회 〈빛그림 시네마〉시삽, 잡지사 기자 등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웹PD와 영화 컨텐츠 전문가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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