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투수 수시등판 안된다

중앙일보

입력

삼성 코칭스태프와 전담 마무리 투수 임창용이 승패와 상관없이 등판할 것을 예고했다.

임창용은 지난 시즌 40 세이브 이상을 올리며 구원왕을 다투었으나, 무리한 등판으로 후반기 구력이 떨어졌다. 그런 이유로 올시즌 연봉협상 때, '이기고 있는 경기에서 1이닝만 등판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마무리 투수의 1이닝 등판은 일본이나 미국같은 선진 야구에서는 기본원칙에 속한다. 작년까지 주니치에 있었던 선동열투수도 예외적인 상황이 아닌 한 이기고 있는 경기에서 9회 단 1이닝만 던졌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에 있는 김병현도 최근 전담 마무리가 된 후 이기고 있는 경기에서 1이닝만 책임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 기본적인 원칙이 지켜지고 있지 있다.

삼성과 임창용은 최근 팀의 성적이 부진하자, 팀을 위해서 승패에 상관없이 등판한다는 데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는 한 치 앞만 내다보는 결정으로 투수생명 단축과 부상에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국내외의 사례를 비교해 봄으로서, 수시등판이 얼마나 위험한 지 알아본다.

가장 먼저, 국내 프로야구의 원년 멤버 박철순을 알아본다. 그는 국내 프로야구 원년, 국내에서는 전혀 생소한 너클볼을 구사하며, 20승을 훨씬 뛰어넘는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의 불꽃같은 투구는 거기서 끝이났다. 그는 몇년전까지도 두산에서 현역선수로 뛰었으나, 원년 이후 한번도 10승 이상을 하지 못하고, 고질적인 부상에 시달리며, 원년 승리의 두배정도에 그치는 통산승수를 쌓았다.

다음으로는 1984년 27승 13패 6세이브를 기록했던 최동원이 있다. 1984년 한국시리즈, 전기리그 우승팀 삼성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해, 시리즈 파트너를 고르는 초강수를 두며, 일부러 져주면서 만만해 보이는 롯데와 한국시리즈에 올라간다.

1984년 한국시리즈 1차전, 롯데 최동원의 완봉승, 3차전 최동원의 전선수 상대 탈삼진을 기록하며 승리, 5차전 최동원이 결승홈런을 맞으며 패배, 6차전, 하루도 쉬지 않고 나온 최동원의 역투로 승리, 그리고 마지막 7차전 역시 최동원의 완투로 롯데가 승리한다.

최동원 선수는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이라 할 만 하지만, 다음해인 85년 바로 허리부상을 마운드에서 쓰러지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 후 매년 최동원의 승수는 줄어들며, 88년에는 10승을 올리지 못하며, 야구 인생을 접게 되었다.

최근의 예를 들면, 현재 야구팬이라면, 다들 알만한 염종석이 있다. 롯데 염종석과 당시 빙그레의 정민철은 92년 신인왕을 놓고 경쟁하는 최고의 고졸 루키였다.

그 해에 염종석은 17승을 따내며, 신인왕을 거머쥐었고, 정민철은 14승에 그치며 분루를 삼켜야 했다.

그러나, 이듬해 전세는 역전된다. 염종석은 무리한 등판으로 인한 팔꿈치 부상으로 계속 부진했어야 했던 반면, 정민철은 작년까지 8년 연속 10승이라는 기록과 한화의 에이스로 군림하다가 일본 요미우리로 트레이드돼 완봉승을 거두는 등 화려한 야구 인생을 계속하고 있다.

염종석은 데뷔 첫해 200이닝 이상을 던지며, 13번의 완투승을 기록했다. 이런 상황이니, 다음해 부상이 오는 게 당연한 것이다.

현재 해태에서 재기에 성공한 최상덕도 같은 케이스다. 93년 대학선수권대회 최우수 투수상, 95년 13승 방어율 2.51을거두며 신인왕을 차지했으나, 이듬해 96년 바로 팔꿈치 수술을 받아야 했다.

국외의 투수들도 무리한 등판에 장사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먼저 가까운 일본의 사례를 살펴보면, 현재 요코하마 베이스스타스의 곤도 히로시 감독을 들 수 있다. 곤도는 현역 시절 주니치에서 투수로 뛰며, 61년 무려 69게임에 나가 429.1이닝을 던졌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엄청난 투구 이닝수다.

이런 무리한 등판으로 첫해는 35승 19패 12완봉승 1.70방어율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록으로 신인왕과 사와무라상을 휩쓸었다. 가히 일본야구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그의 투구도 절대 오래갈 수 없었다. 데뷔 후 3년 동안 통산전적 82승 60패 2.69 방어율로 채 100승도 채우지 못하고 야구 인생을 접어야 했다.

메이저리그는 투수들의 5일 간격 등판과 마무리 투수의 1이닝 마무리가 정확하게 지켜진다. 그러나, 메이저리그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 룰이 지켜지기 시작한 것 얼마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현재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투수생활을 하고 있는 브렛 세이버하겐은 15년 전인 85년, 캔자스시티 로얄즈에서 21세의 나이로 235.1이닝을 던지며 20승을 올려 최연소 사이영상 수상자가 된다. 그 후에도 그는 25살까지 한시즌 200이닝 이상 던진 시즌이 3시즌이나 되었다.

그러나, 이런 혹사로 인해 그의 성적은 꾸준히 하락했고, 96~97시즌에는 재활훈련으로 보내야 했다. 비록 그가 98시즌 15승을 거두며 재기에 성공했으나, 예전의 영화는 찾아볼 수 없다.

이상의 예에서 알아봤듯 투수에게 무리한 등판은 곧바로 부상과 구위 약화를 불러와, 선수생명의 단축으로 이어진다.

우린 주니치가 1등을 하기위해 선동열은 무리하게 등판시키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러한 주니치의 배려가 98시즌의 부진을 딛고 99년 우승이라는 과일을 열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무리한 등판은 비단 임창용만의 예가 아니다. 한화의 구대성이 그랬고, 현재에도 그러하고 있으며, SK의 이승호가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무리를 하고 있다.

이러한 초강수를 통해 꼭 1위를 해야 하는 지, 설사 1위를 하더라도 부서진 투수의 어깨는 누가 보상하고, 다음 시즌은 어떻게 날 것인지 의문이다.

가뜩이나 투수 생명이 짧다는 사이드 암의 임창용이 지금과 같이 등판한다면, 박철순, 최동원, 염종석, 구대성의 전철을 밟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삼성과 임창용은 눈앞의 승리에 급급하지 말고 시즌 초의 자세로 돌아가 '이기고 있는 경기에서만 1이닝'이라는 마무리 투수의 대원칙을 지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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