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원전 계속 지어야 할까요 … 당신이 대통령이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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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
리처드 뮬러 지음
장종훈 옮김
448쪽, 1만5000원

지난 9월 15일 오후 전국 곳곳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공장 생산라인이 섰다. 초유의 정전 사태에 언론에선 ‘전력 예비율’이니 ‘순환 정전’이니 하는 말들을 읊어댔다.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태 땐 ‘노심용융’ 같은 용어도 등장했다. 지난 몇년새 이런 풍경이 낯설지 않다. 황우석·광우병·천안함 사태마다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TV에 나와 전공세미나에서 나올 법한 도식을 이해시키기 바빴다.

 과연 개개인이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할까.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적어도 “세계적인 지도자가 되려면” 알아야 한다. 지구 온난화, 첩보위성, 대륙간탄도탄(ICBM), 탄도요격 미사일(ABM), 핵융합, 핵분열 같은 이슈들 말이다. 오늘날 정부에서 이뤄지는 중요한 결정들이 과학계 첨단기술과 관련이 있고, 불시의 위기상황은 지도자의 현명한 판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될 생각이 없다고 해서 외면할 문제도 아니다. “이런 이슈들에 대해 알지 못한 채 현명한 투표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실제로 저자가 UC버클리에서 진행한 동명의 강의도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한 물리 교양 수업이었다. 요컨대 우리 삶에 깊숙이 연관된 테러리즘·에너지·원자력·우주·지구온난화 같은 주제들을 정색하고 들여다보자는 거다. ‘물리학’의 프리즘으로.

 예컨대 흔히들 태양광 에너지를 예찬한다. 태양광 에너지가 1㎡당 1㎾(=1마력 정도)라 하면 꽤나 유용해보인다. 그런데 현재 시판되는 태양전지는 15%의 태양광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 따라서 1㎡짜리 태양전지는 약 1/7마력을 낼 수 있는데, 이건 건강한 사람이 자전거만 돌려도 만들 수 있는 수준이다. 태양광 자동차가 가솔린 자동차를 대체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이런 식으로 따져본 물리학은 결국 경제와 정치로 연결된다.

 요새 우리 사회에서도 찬반 논란이 일고 있는 원전 문제를 생각해보자. 원전이 화석연료 발전소의 대안이란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원전 자체의 안전성을 차치하더라도 수천년간 사라지지 않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어쩔건가. 미 정부는 네바다 유카 산 지하에 핵폐기물 저장시설을 마련했다. 혹시라도 여기서 방사능이 새나와 상수원을 오염시킨다면?

 저자는 조심스럽게 예시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1만년 간 완벽한 저장시설이 아니라 누출 위험도를 0.1%로 줄이는 거라고. 이렇게 하면 방사능은 우라늄 원석을 땅에서 캐지 않은 수준과 같아진다. 1만 년간 지진 활동이 있을지를 따질 게 아니라 300년 내 지진이 나서 핵폐기물이 지하수로 스밀 확률이 1%가 될까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토양 속 천연 우라늄이 내뿜는 ‘천연’ 방사능은 도외시하면서 원전 폐기물의 100% 안전성만 요구하는 게 과연 합리적인가 하고.

 반론하고 싶은가. 얼마든지 논쟁이 가능하다. 책이 예시하는 우주계획의 우선 순위 문제, 지구 온난화의 인과 관계, 테러리즘 방지책 등은 지금도 진행 중인 논쟁 사안이다. 다만 물리학자로서 저자는 “대중이 지구 온난화에 대해 ‘아는 것’ 대부분이 왜곡되고, 과장되고, 선별된 것들에 근거를 두고 있다”(336쪽)고 지적한다. 이러한 왜곡과 과장을 부추기는 게 정치인들이다. 저자가 대표사례로 꼽는 게 앨 고어 전 부통령의 화제 다큐 ‘불편한 진실’이다. 저자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의 데이터를 고어가 과장·곡해하고 있는 경우를 꼼꼼히 지적하면서 경고를 덧붙인다. “토론이 난장판일수록 대중은 결정을 미룰 것이다. 과장하면 할수록 대중은 지도자를 더욱 따르게 마련이다. 또 뉴스에도 많이 나올 것이고.”

 평균적인 인문학 독자의 눈높이에서 결코 만만한 책은 아니다. 첨단과학용어와 낯선 공식 뿐 아니라 과학을 둘러싼 정치와 비즈니스의 함수까지 뇌리를 복잡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도 FTA(자유무역협정)니 ISD(투자자·국가 소송제도)니 하는 전문용어들의 바다에 표류하고 있다. 전문가의 결정을 믿고 따르자니 우리 삶에 너무 깊숙이 이 이슈들이 들어와버렸다. 이럴 땐 ‘닥치고 투표’ 할 일이 아니라 공부해야 한다. 세계적인 지도자가 되진 못하더라도 세계적인 지도자를 가려 뽑기 위해서라도.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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