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고 지도층은 마시는 공기가 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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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한 공기청정기 업체가 인터넷에 올린 홍보 게시물이 중국 사회에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4일(현지시간)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공기청정기 업체인 위안다(遠大)가 최근 자사 홈페이지에 ‘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국가주석 등 최고 지도부가 사용하는 건물에 공기청정기를 대거 설치했다’는 게시물을 올렸다”고 전했다. 이어 “이를 본 시민들이 베이징의 대기오염이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당국을 비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반 시민과 달리 국가주석 등 최고 지도부가 특수 공기청정기가 설치된 공간에서 생활하는 데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SCMP에 따르면 후난(湖南)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위안다 그룹은 자사 홈페이지에서 “우리 제품이 중난하이(中南海·중국 최고 수뇌부가 모여 사는 베이징 주택지구) 지정 공기청정기라는 영예를 얻었다”고 소개했다. 공기청정기는 베이징 올림픽이 끝난 직후인 2008년 12월부터 중난하이에 200대 이상이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실에서 실시된 모의실험 결과 공기청정기의 필터에서 잉크색 더러운 물이 나오는 것을 본 뒤 최고 지도부가 이 설비의 필요성을 확신했다”고 설명했다.

 또 고위 관료 출신인 룽융투(龍永圖) 보아오포럼 전 사무총장은 직접 홍보 동영상에 등장해 “대기오염이 너무 심각해 자동차는 물론 호텔 방에서도 공기청정기를 써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중국에서 지도층과 국가기관을 위한 소위 ‘터궁(特供)’ 제품이 별도로 생산·유통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최고 지도층이 일반 시민들과 다른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최근 베이징의 공기 질이 나빠졌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사실이 밝혀져 베이징 시민들은 크게 분노하고 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는 “서민들은 멜라민 우유와 오염된 공기 속에서 사는데 지도부는 공기마저 특별 공급받느냐”는 비난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

 저우샤오정(周孝正) 런민대 교수는 SCMP와의 인터뷰에서 “일당 독재와 과도한 권력 집중으로 생겨난 특권층의 혜택은 중국의 정치·사회·환경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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