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4580원의 비애 … 경비원 7만 명 쫓겨날 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서울 목동 14단지 아파트에서 경비원 박종식(69)씨가 1일 낙엽을 쓸다 CCTV 아래서 땀을 닦고 있다. [김성룡 기자]

서울 양천구 목동14단지 아파트에서 11년째 경비원으로 일하는 윤진호(65)씨는 1일 아파트 입구에 설치 중인 폐쇄회로TV(CCTV)를 바라보며 가슴이 철렁했다.

윤씨는 “CCTV 설치가 끝나고 자동문까지 다 달면 쫓겨나 집으로 가야 할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윤씨는 2000년 초 다니던 제약회사의 구조조정으로 실직했다. 일할 데가 없어 애를 태우던 중 3100가구가 사는 이 아파트단지 경비원으로 취업했다. 꼬박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며 받는 급여는 월 100만원 안팎. 윤씨는 “오전 6시부터 다음 날 같은 시간까지 버텨야 되지만 일하는 게 좋다”며 “벌어 놓은 돈도 없는데 늙은 아내와 어떻게 벌어먹고 살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전국 아파트 경비원 40만 명이 ‘최저임금 태풍’을 맞고 있다. 정부가 내년부터 경비원들의 최저 생활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시간당 4580원의 최저임금 100% 적용을 의무화했지만, 이 제도가 이들의 일자리를 앗는 독(毒)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2007년 최저임금법 개정 당시 40만 명의 경비원(감시직 포함) 중 87%가 60세 이상인 점을 감안, 임금근로자 중 경비원만 최저임금 100% 적용을 올해 말까지 5년간 유예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통상 최저임금의 80%를 받아온 경비원들에게 최저임금을 100% 보장해주려면 입주민들의 관리비 부담이 그만큼 커진다. 그러자 아파트 단지마다 무인경비시스템 등을 통해 경비인력 최소화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전국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 채수천 경기도연합회장은 “4580원 때문에 전국에서 7만~8만 명의 경비원이 한겨울에 거리로 내쫓길 상황”이라고 말했다.

 목동14단지 아파트의 경우 올 6월부터 2억5000만원을 들여 34개 동의 현관과 엘리베이터 등에 356개의 CCTV를 설치 중이다. 주민들이 ‘관리비 폭탄’을 피하겠다며 무인단속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해서다. 아파트 관리소와 주민들은 최저임금의 80%를 주는 경비원 128명에게 100%를 적용하면 가구당 월평균 7만(148㎡형)~3만원(125㎡형)을 더 내야 할 것으로 보고 이런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글=장정훈·이상화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