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ISD 안 한 대신 미국에 투자 문턱 낮춰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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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이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Investor State Dispute) 문제로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ISD가 국가 주권을 침해할 것”이라는 민주당 등의 주장은 타당한 것일까. 국내에서 대표적인 국제중재 전문 변호사로 꼽히는 4명에게 ISD를 둘러싼 논란에 관해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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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주형(43·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ISD는 사법 주권 등을 침해할 수 있는 독소 조항”이란 시각에 대해 “글로벌 트렌드(국제적 추세)”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ISD는 외국인 투자를 끌어오기 위한 유치책이자 동시에 미국에 진출할 국내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도 된다”고 했다. 정부가 80여 개국과 투자협정을 체결하면서 ISD 조항을 넣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란 설명이다.

 그렇다면 “독소조항이기 때문에 호주도 2004년 미국과 FTA를 하면서 ISD 조항을 뺐다”는 민주당의 주장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해 김범수(48·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미국과 호주는 영미법의 ‘커먼로(Common law·보통법)’ 전통을 갖고 있는 나라들”이라며 “개인과 기업, 국가 간에 광범위한 소송제기권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별도로 ISD를 도입할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실제로 미국은 지금까지 모두 17개국과 11개의 FTA를 맺었다. 그중 ISD 조항이 포함되지 않은 국가는 호주와 이스라엘 두 곳에 불과하다. 이스라엘과는 상품 부문에 국한해 FTA를 체결해 ISD가 필요 없었다. 미국-호주 FTA의 경우 같은 ‘커먼로’ 국가라는 점과 아울러 호주 광물자원 투자에 대한 고려도 반영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호주가 ISD를 거부한 이유 중 하나는 자국 광물자원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태호 통상교섭본부 FTA 정책국장은 “호주는 미국이 요구했던 ISD를 받지 않는 대신 투자영향 사전 검토대상을 2만 호주달러 이상에서 10만 호주달러 이상으로 바꿔 투자 문턱을 낮춰 줬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한·미 FTA에서 우리는 ISD를 인정하는 대신 우리 국민들이 민감한 ‘부동산 시장’ 부분은 제외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재기(62·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ISD 도입으로 국내 농어민·중소기업 보호가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에 대해 “투자유치와 기업보호에 필수적인 ISD를 인정하지 않으면 오히려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중국·인도와의 FTA 협상 과정에서 국내 기업 보호를 위한 ISD 조항을 넣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연호(53) 변호사는 “미국에 있는 국제투자분쟁중재센터(ICSID)에서 판정을 받게 돼 판정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정치권 주장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는 “실질적 측면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작다고 볼 순 없지만 ISD 외에 국제분쟁을 완벽하게 해결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서경호·김현예 기자

◆ISD(투자자·국가소송제도, Investor-State Dispute)=외국에 투자한 기업이 현지 정부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때 국제기구의 중재로 분쟁을 해결토록 한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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