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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세계화를 위한 모임 │ 화요만찬 ⑧ 전통 도자기를 이용한 한식 상차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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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차림에는 대접하는 이의 정성과 받는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담겨 있다. 음식을 어떤 그릇에 담고 어떻게 장식하느냐에 따라 음식은 허접스러운 일상이 되기도 하고 고상한 예술이 되기도 한다.

광주요 그룹 조희경(31) 이사는 “프랑스나 일본의 식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음식을 즐기는 전반적인 요소가 하나의 문화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라며 “민족 고유의 예술성과 정신이 담긴 도자 문화를 식생활에 접목시켜 우리 문화의 역사와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식도 상차림에 따라 문화가 되기도 하고 못 되기도 한다. 광주요 그룹 조태권(63) 회장의 한식 세계화를 위한 모임 ‘화요만찬’이 10월을 맞아 전통 도자기를 이용한 한식 상차림을 선뵀다. 광주요 그룹은 조선 왕실에 도자기를 진상하던 광주관요의 전통을 이어가는 기업이다.

10월 만찬을 준비한 가온소사이어티 팀의 김병진(35) 셰프는 “갓 수확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전통 식기에 담아 몸과 마음을 풍성하게 하는 가을 상차림을 준비했다”며 8가지 메뉴를 선보였다.

글=홍지연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1 전복장아찌를 곁들인 파래두부

파래를 넣고 만든 두부는 푸른 솔잎을 연상시킨다. 볶은 은행을 얹어 가을 정취를 더하고 연꽃 잎 모양을 닮은 광주요 모던라인 접시에 담았다. 깨끗한 백색의 자기 가장자리 부분에 굵은 주름이 잡혀 있는데 선선한 가을바람에 물결이 일어 여울이 진 듯한 느낌을 준다. 씹을수록 다시마 간장의 진한 맛이 배어 나오는 쫄깃쫄깃한 전복과 부드러운 두부의 식감이 조화롭다. 해조류는 콜레스테롤과 당 흡수를 억제하고 배변활동을 원활하게 하는 식이섬유와 요오드가 풍부하다. 여기에 강장 식재료로 알려진 전복을 다시마 간장에 숙성시킨 장아찌를 곁들이면 맛과 멋, 건강까지 챙길 수 있다.

2 석류만두탕

닭고기·도라지·잣 등을 만두소로 넣고 석류 모양으로 빚었다. 만두를 찔 때 솔잎을 깔아 향을 더했다. 다산을 의미하는 과일인 석류 모양 만두는 가을의 풍성함을 상징한다. 만두를 씹으면 입안 가득 도라지 향이 퍼져 은은한 맛을 낸다. 조선간장으로 간을 맞춘 뜨끈한 양지육수는 몸에 온기를 보해준다. 석류만두탕을 담아낸 그릇은 1960년대 선보였던 클래식라인으로 흙빛 도자에 다홍색 점들이 박혀 풍성하게 열매 맺은 감나무를 생각나게 한다.

3 우엉초잡채를 곁들인 낙지 초무침

우엉을 채 썰어 다시마 육수에, 낙지는 녹차 물에 각각 데쳐낸 후 홍시초고추장에 무쳤다. 초고추장에는 막걸리를 발효시켜 만든 식초와 설탕 대신 가을 대표 과일인 홍시를 넣어 단맛을 냈다. 메뉴가 가진 색감을 살리기 위해 절제미가 돋보이는 2010년 모던라인 ‘월백’을 선택했다. 은은한 달빛을 형상화한 ‘월백’은 기본에 충실한 백자를 모티브로 만들어져 청순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자칫 자극적일 수 있는 빨간 양념 색과 어울려 균형을 잡아준다. 장식으로 더한 달걀 반숙은 하얀 보름달 같기도 하고 부들부들해 보이는 표면이 껍질을 벗겨놓은 잘 익은 홍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4 새우연근전

새우 살과 연근, 계란 흰자를 이용해 기름에 지져낸 동그랑땡이다. 한 번에 60만 개가 넘는 알을 낳는다는 새우는 다산의 상징으로 칼슘과 타우린이 풍부하게 함유된 고단백 식재료다. 두툼한 전을 가르면 붉은 빛으로 익은 새우 살과 채 썬 하얀 연근, 청고추와 홍고추가 어우러져 우리나라 고유의 단청 장식을 생각나게 한다. 수확을 끝내고 논에 서 있는 짚단이 연상되는 차분한 느낌의 식기는 화려한 음식과 대조를 이룬다. 2000년 초반 출시된 클래식라인 식기로 오목한 그릇에 볼록한 뚜껑을 덮고 보면 그릇 전체가 길쭉하고 깊이감이 있어 보인다. 제철을 맞아 땅속 깊은 곳에서 나온 연근과 바다 깊숙한 곳에서 잡힌 새우 등 가을의 깊이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재료와 식기가 조화롭다.

5 갈비구이

쇠고기에도 제철이 있다. 소는 본격적인 월동 준비를 하기 위해 가을부터 영양분을 몸에 축적한다. 축적된 영양분은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할 즈음 몸 전체에 퍼진다. 지방질이 살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육즙이 풍부해진다. 한우 갈비를 양지육수와 조선간장을 합해 만든 소스에 재워 숯불에 구워냈다. 불긋한 꽃나무가 그려진 내열자기 뚜껑을 열면 바람에 흩날려 뿌려진 것 같은 튀긴 마늘이 눈에 들어온다. 알맞게 익은 갈비구이, 여기에 노란 은행잎처럼 생긴 마늘과 푸른색 아스파라거스의 조합에 짙은 갈색의 내열자기가 어울려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한 초가을 가로수 산책길을 연상시킨다.

6 갈치조림

시원하게 우려낸 조개육수에 고춧가루와 마늘을 넣고 갈치를 조렸다. 매콤한 고추 양념이 위액 분비를 촉진해 식욕을 돋운다. 여기에 소화효소와 비타민C가 많이 함유된 무를 넣어 시원함을 더했다. 갈치조림이 담긴 그릇은 1970년대 클래식라인 제품이다. 식기 한 가득 늦가을 서리를 연상시키는 눈꽃 모양이 촘촘히 박혀 있다. 빨간 양념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갈치 껍질의 은빛과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 내리는 듯한 식감 역시 가을 서리와 닮아 있다.

7 버섯솥밥

표고버섯과 새송이버섯, 은행 등을 햅쌀과 함께 내열자기에 지어냈다. 이중으로 처리된 솥은 밥을 지을 때 향이 날아가는 것을 막아준다. 밥을 담아낸 그릇은 1980년대 클래식라인 도자기로, 뚜껑에는 꼬부라진 이파리 모양을 한 손잡이가 달려 있어 알차게 익은 감을 연상케 한다. 고소한 은행 냄새와 버섯 향이 은은한 가을을 느끼게 해준다.

8 배숙

생강을 저며 오랜 시간 다린 물에 후추를 박은 배와 꿀을 넣고 끓인다. 생강의 싸하면서도 시원한 맛과 배와 꿀에서 나온 달짝지근함이 조화를 이룬다. 배 가운데 박힌 후추가 ‘오도독’ 깨지면서 쌉싸래한 향이 퍼져 한동안 입안에 맴돌았다. 배숙의 진한 맛이 한 상 잘 대접받은 만찬의 여운으로 남았다. 배숙을 담은 그릇은 90년대 초반에 선보인 클래식라인의 청자 제품으로 모난 데 없이 둥글고 전체적으로 볼록하다. 청자의 푸른 빛에 가을 하늘의 청량함이 그대로 담겨 있다.

●화요만찬은 고급 증류주 ‘화요’를 생산하는 광주요 그룹 조태권 회장이 각계각층의 인사를 초청해 자신이 개발한 한식을 대접하고 한식 세계화에 관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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