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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김선달은 어리숙했을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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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김선달이 장에서 장닭 파는 사람을 만났다. “이게 무슨 동물이오?” 장사꾼은 이런 천치가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봉이오”라고 대답한다. 김선달은 닭을 비싸게 사서는 원님에게 ‘봉’을 바치겠다고 수선을 피운다. 자초지종을 안 원님은 장사꾼을 엄하게 꾸짖고 돈을 돌려주게 한다. 그가 원래 받은 돈을 돌려주려 하자 김선달은 “봉으로 알고 샀는데 내가 이것밖에 안 줬다는 말이냐”고 펄펄 뛴다. 그 바람에 장사꾼은 울며 겨자 먹기로 큰돈을 줘야만 했다. 여기서 봉이 김선달이라는 말이 유래했다고 한다.

 남의 말을 쉽게 곧이듣는 사람을 두고 흔히 ‘어리숙하다’고 한다. 이 표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전에 ‘어수룩하다’의 잘못으로 올라 있었지만 이제는 표준어의 자격을 얻었다. 그런데 어감 차이가 좀 있다. ‘어리숙하다’는 ‘어리석다’의 뜻이 강하다(발음도 비슷하지 않은가). 반면 ‘어수룩하다’는 순박하다, 순진하다의 의미가 강하다. “그는 어리숙하게도 대신 예금을 찾아주겠다는 사기꾼의 말을 믿었다.” “영악한 사람보다는 어수룩한 사람에게 정이 더 간다”처럼 쓸 수 있다.

 이 단어들과 의미상 친척에 해당할 만한 표현으로 ‘어리버리하다’가 있다. 학교 신입생이나 갓 입사한 회사원 등을 떠올리면 되겠다. 하지만 ‘어리버리하다’는 바른 표현이 아니다. 이 경우는 ‘어리바리하다’라고 해야 한다. 사전상 의미로는 ‘정신이 또렷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어 몸을 제대로 놀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때 나는 갓 전입한 어리바리한 이등병이어서 모든 게 낯설었다”처럼 쓸 수 있다.

김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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