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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교류] 원로 이병국씨, 경평축구 회고

중앙일보

입력

"평양팀 슛~, 골인!골인!"

1946년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경평(京平)축구대회의 평양팀 골키퍼로 활약했던 이병국(李炳國.80.2002월드컵 자문위원)옹.

그는 지금도 동료 선수가 서울팀 골네트를 시원하게 갈랐을 때 부둥켜 안고 뒹굴었던 장면이 생생하다고 했다.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 이듬해까지 한민족의 애환을 담은 경평축구.

李옹은 낡은 사진첩을 들추며 "당시에는 축구가 한민족이 하나라는 의식을 갖게 하는 역할을 했다" 며 "서울시가 경평축구 부활을 추진한다는데 통일의 물꼬를 틀 것으로 확신한다" 고 눈시울을 붉혔다.

李옹의 고향은 평양. 평양 광성중.고 재학시절 야구를 즐겼던 그는 얼떨결에 축구부 요청으로 골키퍼를 맡았다가 아예 선수가 됐고 38년엔 서울의 연희전문학교(연세대 전신) 축구선수가 됐다.

李옹은 해방 직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열린 경평축구대회의 교훈을 새겨야 한다고 했다.

"'남북으로 갈렸지만 여전히 '우리는 한민족이었지. 축구장에선 이데올로기도, 남북 구별도 없었거든. "

당시 동료 가운데 평양팀의 옥정빈(88.수비)옹, 서울팀의 정남식(84).김규환(80)옹 등 4명만이 생존해 세월의 허무함도 느낀단다.

"경평축구가 처음 열린 것은 29년으로 46년까지 양팀은 18차례 맞붙어 평양팀이 6승8무4패로 앞섰지. 90년의 남북 교환경기는 진정한 경평축구라고 볼 수 없지. 올해 성사되면 44년만에 '통일슛' 의 맥을 잇는 거야. "

한편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은 16일 기자간담회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경평축구 부활을 제안, '유명한 시합이니 '부활하는 것이 좋겠다' 는 '적극적인 '답을 얻었다" 고 밝혔다. 경평축구 부활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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