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호회 好好 - GN밴드

중앙일보

입력

지난 16일 오전 송파동의 한 연습실에 모여 연습 중인 GN밴드 멤버들. 왼쪽부터 곽지연·손균우·김영주·이정진씨.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

드럼 주자의 손이 빨라지고 기타와 베이스가 강렬한 음을 내 뿜으며 ‘거위의 꿈’이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보컬 이동현(31)씨의 굵고 낮은 목소리에 베이스 주자 이정진(26)씨의 모던한 음색이 더해진다. 아직은 누군가 보는 앞에서 연주하는 일이 익숙지 않은 탓에 중간 중간 어색한 표정과 웃음이 새어 나온다. 드럼·건반·엠프·기타·베이스가 빼곡히 놓인 연습실은 예닐곱 사람이 들어가서 움직일 수 있는, 딱 그만큼의 넓이다.

 16일 오전, 송파동 한 음악 아카데미. 일주일에 한번 있는 GN밴드의 연습 날이다. GN밴드는 트위터 모임인 ‘강남당’ 산하의 직장인 밴드로, ‘강남’의 영어 이니셜을 따서 지어진 이름이다. 강남당은 트위터 유저 중 강남·서초·송파 지역에 살거나 근무하는 이들의 모임으로, 회원수는 5400여 명이다. 라이프 트렌드를 이끄는 강남이란 점과 트위터 유저들을 기반으로 한다는 특성 때문인지 회원들은 주로 20·30대의 젊은이들이다. 강남당 당주인 허권(43)씨는 “지역 정보를 공유하고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강남당’을 만들어 활동하다 보니 취미 동호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맨 처음 만든 게 바로 이 밴드”라고 소개했다.

일주일의 스트레스 날리는 휴식 같은 시간

 지난 6월 창단한 GN밴드는 오디션을 거쳐 통과한, 실력을 검증 받은 이들로 구성돼 있다. 모집 당시 직장인 밴드 붐을 타고 수많은 지원자가 몰렸다. 불가피하게 오디션을 거쳐 정예 회원을 선발하게 됐다. 창단 멤버 중 몇몇은 개인 사정으로 바뀌었다. 현재 인원은 10명. 메인 보컬 3명과 일렉트릭 기타 2명, 어쿠스틱 기타·드럼·베이스·건반이 각 1명씩이다. 나머지 1명은 특이하게 거문고 전공자여서 밴드 내에서 거문고 연주를 한다. 대학생 2명을 제외한 8명 모두가 직장인이다.

 리더인 김영주(28)씨는 “취미로 기타를 배우던 중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럿이 합주를 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지원했다”고 말했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작한 것이 넉달 만에 ‘가장 편하고 즐거운’ 일이 돼버린 것이다. 건반을 맡고 있는 곽지연(28)씨는 처음엔 코드도 몰랐다. “학원에서 배우는 식으로만 피아노를 치고 악보를 봐왔던 터라 코드 자체를 몰랐어요. 멤버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 걱정이 많았죠.” 곽씨는 지금도 피아노 학원을 다니며 건반 실력쌓기에 애쓰고 있다.

 베이스 주자인 이정진씨는 멤버 중 유일하게 직업 음악인이다. 음악 아카데미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무대에서 연주도 한다. 밴드 결성 초기에 도움을 주려 오가다가 정식 멤버로 눌러 앉았다. ‘즐기면서 음악을 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멤버 막내인 드럼 주자 손균우(23)씨는 대학생이다. 그는 “밴드가 하고 싶어 교내 밴드부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학교’라는 울타리 속에서 활동하다 보니 자유롭지 못한게 많아 부담스러웠다”며 “GN밴드는 ‘스트레스 받지 말자’는 모토를 가진 곳이라 편안하게 활동할 수 있는 게 최대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연주만 함께 하는 것이 아니다. 집이나 직장이 가깝다 보니 만나는 횟수도 잦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정보도 많다. 트위터를 기반으로 모인 터라 정기 모임이 아니어도 그때그때 연락해 만나는 일도 잦다. 송파동과 잠실동에 사는 동갑내기 김영주씨와 곽지연씨는 밴드 멤버로 만나 둘도 없는 동네 친구가 됐다. 별 다른 약속 없이 집에 있다가도 ‘뭐해?’라며 트위터로 멘션을 주고받다가 불쑥 나와서 만나기도 한다.

전통음악 접목한 색깔있는 밴드 되고 싶어
 
 GN밴드엔 대단한 목표가 없다. 꼭 한번 마스터해보고 싶은 곡도 없다. 그저 즐기려고 모이는 것이다. 일주일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는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는 동안 날아가 버린다.

 이정진씨는 “밴드는 실력보다 ‘합’이 얼마나 잘 맞느냐가 중요하다”며 “단순한 곡을 하더라도 우리만의 분위기를 나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곽지연씨 생각도 비슷하다. “멤버 중 거문고 전공자가 있어크로스 오버 음악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며 “한국적인 음색을 가미해서 연주하는, 우리만의 색깔 있는 밴드가 되면 멋있을 것도 같다”고 전했다. 요즘 연습하고 있는 곡은 ?거위의 꿈?을 비롯해 ‘밤이 깊었네’ ‘기적’ ‘사랑보다 깊은 상처’ 등이다. 잔잔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노래를 주로 선곡한다.

 연말에는 첫 공연이 예정돼 있다. 강남당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송년 행사에서 GN밴드가 중심이 돼 음악 공연을 펼친다. 지금껏 연습한 기량을 선보이는 첫 무대인 셈이다. 김영주씨는 “실력을 자랑하기보다 서로 조화를 이루는 따뜻하고 흥겨운 공연이 됐으면 좋겠다”며 “대단한 음악을 하겠다기보다 삶의 즐거움을 위해 모인 것이니까요”라고 말했다.

<하현정 기자 happyha@joongang.co.kr 사진="김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