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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이천함 … 100m 급잠항 땐 안전바 잡아도 속 울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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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이천함(SS062·1200t급) 제1조타수인 이상민 상사(왼쪽)와 제2조타수 전국진 하사가 20일 이천함 구조와 동일한 시뮬레이션 구동장치에서 조종훈련을 하고 있다. 잠수함 내부 조종실 사진은 해군 보안규정상 촬영 및 공개가 허용되지 않았다. [해군 제공]

바다의 ‘스텔스’로 불리는 잠수함은 고도의 은밀성으로 전쟁 억지력은 물론 유사시 기습 타격할 수 있는 핵심전략무기체계다. 지난 20일 진해의 제9잠수함 전단(전단장 김판규 준장)을 찾아 우리 잠수함 전력의 주력인 이천함(1200t·209급) 내부와 승조원의 생활을 취재했다. 해군이 잠수함 내부 취재를 허용한 것은 처음이다.

 “One shot! One hit! One sink!” “잠수함은 100번 잠항하면 반드시 100번 부상한다!” “적이 도발하면 백배, 천배 보복한다!” 잠수함 기지에 들어서자 출정을 몇 시간 앞둔 정운함(1200t) 승조원들의 구호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구호를 뒤로하고 이천함으로 향했다. 최근 한 달간의 임무를 마치고 정박 중인 이천함은 육중하고 매끈한 고래 같았다. 해치에 연결된 사다리를 타고 함내로 들어갔다. 좁았다. 두 사람이 걷기 힘든 좁은 통로를 따라 승조원 침실-전투 정보실-조종실-기관실이 이어졌다.

 “승조원 40명의 생활 공간은 20평. ‘나의 공간’은 없고 ‘우리들의 공간’만 있습니다.” 이경래 함장 얘기다. 장착된 어뢰 발사관을 마주하고 가로 50㎝, 세로 180㎝ 책상 두 개가 놓였다. 식당 겸 회의 장소. 잠수함 안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다. 바로 옆엔 길이 180㎝, 폭 60㎝의 침대가 3~4겹으로 촘촘히 박혀 있다. 누워 보고 나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산소는 육상보다 1~2% 부족하고, 이산화탄소는 20배 정도 됩니다. 냄새가 큰 적이죠. 방귀 자주 뀌는 사람은 욕먹죠. 하하.” 바닷물 정수 장치가 있 지만 물은 항상 부족하다. 빨래는 하지 않고, 샤워는 1~2주에 한 번씩 한다. 1990년대 중반 잠수함 화장실에 비데를 설치한 것도 승조원 위생 때문이다. 조타수 이상민(37) 상사는 “목욕을 하고 집에 가도, 아이들이 냄새난다며 안기지 않고 도망갈 때도 있다”고 했다.

잠수함 내 승조원 실제 침대(폭 60㎝×길이 180㎝)에 기자가 누워본 모습. 돌아눕기도 내려오기도 쉽지 않았다. [해군 제공]

 잠수함의 생명은 은밀성. 출항 이후 가능하면 본부와 교신을 끊는다. ‘신뢰’와 ‘배려’가 승조원의 덕목인 이유다. 이 함장은 “동료의 성실성과 해도(海圖), 소리만 믿는다”고 했다. “함에는 밸브만 960개입니다. 누가 밸브 하나 제대로 잠그지 않으면 모두 죽을 수 있는 게 잠수함이죠. ”

 송기성(대령) 전대장은 “상선인지 군함인지, 고래떼인지 새우떼인지 소리로만 알 수 있다”고 했다. 새우떼가 지나갈 땐 어떤 소리가 날까. “사르르 사르르”다. “동해로만 나가면 희한하게 돌고래떼가 100~150마리씩 시끄럽게 잠수함을 따라옵니다. ‘삐익, 삐익’ 자기들끼리 무슨 말을 주고 받는지….” 소리를 내선 안 되기에 DVD를 볼 때도 자막이 있는 외국 드라마만 본다고 한다.

 김판규 전단장은 “잠수함 근무가 3D업에 속하지만, 핵심 전략무기를 운용한다는 자부심으로 임하고 있다” 고 소개했다. 승조원들은 이날 오후 출정을 2주 앞두고 시뮬레이션 훈련센터에서 팀워크를 다졌다. 100m까지 급잠항할 땐 속이 울렁거리고 안전바를 잡고 버티기도 힘들었다. 제9잠수함 전단은 2015년 잠수함 사령부로 승격된다.

진해=김수정 기자

이천함 제원

1992년 국내 첫 생산 장보고급 잠수함

수중배수량 1200t ·길이 56m · 폭 6.2m

무장 33㎜ 어뢰발사관 장착

승조원 40명·최대 시속 40㎞

승조원만 맛보는 심해수 와인

해수 스며들어 짭조름

유명 와이너리 레벨이 붙어 있지 않지만 귀한 와인이 있다. 바로 심해수와인(사진)이다. 잠수함은 건조 직후, 또 13년 운용 뒤 대규모 정비를 한 다음 최심도(수심 250~300m) 훈련으로 이상 유무를 확인한다. 이때 잠수함 갑판에 국산 마주앙을 달아매 심해로 내려가면 해수가 코르크를 밀고 들어와 짭조름한 맛의 와인이 된다. 교육훈련 후 승조원 자격을 부여받고 처음 잠수함 타는 사람들에게 한 잔씩 따라준다. 우리 해군이 보유하고 있는 9대의 장보고급(1200t)은 물론 2007년부터 운용 중인 손원일함 등 3대의 1800t(214급) 잠수함들도 건조 후 ‘심해수 와인’을 제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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