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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묻지 않은 동심, 그 아름다운 세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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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호기심으로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토토가 창가에 서 있다. 교실 지붕 밑에 집을 짓고 있는 제비에게 "너 뭐하고 있니?"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다가올 태평양 전쟁의 그림자가 토토의 집에까지 드리울 거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 무렵 바다 건너 저 멀리 미국에는 엘로이즈가 '여기는 뉴욕!' '여기는 파리!'하면서 세상이 좁아라 천방지축 뛰어다닌다. 튀는 아이, 토토와 엘로이즈가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분명한 사실은 토토가 너무나 사랑한 도모에 학원이 폭격으로 불에 타 없어졌더라도 이 둘은 처음부터, 그리고 끝까지 영원한 친구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리라. 새벽 샘물처럼 맑기만 한 동심은 서로를 알아보는 법이므로.

엉뚱하기만 한 행동을 하지만 이 아이들이 '왕따'가 아니라 기발한 창의성의 소유자로 자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동심의 세계를 이해하고 이들의 개성을 마음껏 키워줄 수 있는 교육이, 선생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수업에 방해가 된다며 퇴학당한 토토를 이해하고 지극히 사랑한 고바야시 소사쿠 선생님이 있다. 토토가 도모에 학원에 처음 들어온 날 토토의 이야기를 무려 4시간 동안이나 들어줬던 선생님이다. 그 분은 자연을 사랑하면서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하셨다. 이런 분이 있었기에 '말썽만 피우는 문제아' 토토가 일본 방송계에서 가장 저명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창가의 토토〉(프로메테우스 출판사)는 최초의 일일 대담 프로그램인 아사히TV의 〈테츠코 룸〉을 20년 넘게 진행하고 있는 구로야나기 테츠코가 도모에 학원과 고바야시 소사쿠 선생님을 추억하기 위해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소설 형식으로 쓴 책이다.

나무가 그대로 교문이 되고 전철 교실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과목부터 공부하는 자유로운 학교, 도모에 학원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려내고 있다. 호기심으로 이곳저곳 기웃대다 사고만 치는 토토도, 소아마비로 손발이 불편한 야스아키도, 성장이 멈추어버려 토토보다 키가 작은 다카하시도 '문제아' '장애자'로 낙인 찍히는 것이 아니라 진정 서로를 아껴주는 도모에 학원의 동등한 구성원이 된다.

학교 책상이 위로 열리는 것이 신기해 수업 시간에 수없이 책상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토토가, 수업 중인데도 창가에 서서 지나가는 친동야(이상한 복장을 하고 악기를 울리면서 거리를 돌아다니며 선전, 광고하는 사람) 아저씨를 붙잡고 노래를 불러달라던 토토가, 그래서 선생님이 넌덜머리 내며 학교를 그만두게 한 토토가 도모에 학원에 들어와 달라진 모습이란…

도모에 학원에는 자신만이 올라갈 수 있는 나무가 한 그루씩 지정되어 있다. 토토는 여름방학에 소아마비라서 자기 나무가 없는 야스아키를 위해 '대모험'을 강행한다. 야스아키가 자신의 나무에 올라오도록 도와주는 것. 어른들에게 혼날까 봐 둘만의 비밀로 간직한 채. 내리쬐는 여름 땡볕 아래서 접사다리를 펴놓고 야스아키 다리를 밑에서 들어올리는 토토, 접사다리 꼭대기에 오른 후 자신의 불편한 몸을 토토에게 완전히 맡긴 채 나무에 오르는 야스아키.

마침내 나무에 올라 서로 부둥켜안은 채 한없이 바라보던 한여름의 풍경. 야스아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무타기를 한 이 날, 그만큼이나 토토도 기뻤으리라. 남을 도왔다는 기쁨을 처음 맛본 날이기에.

학교 뒤뜰에 쌓여 있는 신문지 더미를 보고 무작정 '다이빙'했다가 정화조 구멍에 빠질 만큼 호기심 많은 토토. 그런데 호기심에서는 토토에 뒤지지 않는 또 한 명의 꼬마숙녀가 있다. 뉴욕 한가운데 플라자 호텔에서 살면서 세상 일에 시시콜콜 참견하기 좋아하는 엘로이즈가 그 장본인.

케이 톰슨의 〈나야, 엘로이즈 여기는 뉴욕!〉(리드북KIDS, 2000년)의 엘로이즈는 방 청소하는 아줌마도 도와야 하고, 직원 전용 엘리베이터로 가서 사람들이 쓰다 버린 것 중에서 갖고 싶은 게 있나 알아도 봐야 되고, 교환원 언니들도 도와야 하고, 비상구 표시가 보이면 꼭 들어가 봐야도 되고…

아휴~ 로비에서 꼭대기층까지 매일 오르락거려야 할 정도로 할 일이 무지 많은 그래서 쉴 틈이 없는 말썽꾸러기, 엘로이즈. 아직 일곱 살밖에 되지 않은 엘로이즈가 학교에 들어가면 토토처럼 퇴학을 당할까? 도모에 학원 같은 곳이 있어야 할 텐데.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소담출판사,1998년)의 주인공 홀든은 또 어떤가?

학교에서 쫓겨난 뒤 기숙사를 뛰쳐나와 며칠 동안 무작정 뉴욕 시내를 쏘다니는 홀든은 '가출 청소년'이지만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조그만 어린애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것을 항상 눈에 그려본단 말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 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 주는 거지. 이를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야. 바보 같은 짓인 줄은 알고 있어. 그러나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것은 그것밖에 없어"(이 책 232쪽)라며 자신의 소박한 꿈을 여동생 피비에게 이야기한다.

토토·엘로이즈만큼이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동심을 가진 홀든에게 누가 '문제아'라고 낙인을 찍겠는가! 홀든이 다닌 펜시 고등학교가 도모에 학원이 아니었을 뿐.

도모에 학원에 들어갈 수도, 고바야시처럼 훌륭한 선생님을 만날 수도 없는, 사회에서 철저히 소외당하는 프랑스 하층민 중에서 유색인 청소년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기욤 게로의 〈꼬마 이방인〉(자인, 2000년)에 나오는 프랑스에 입양 온 까만 눈동자의 한국인 소녀 미르띠유, 10년 넘게 프랑스에서 살다 알제리로 짐승처럼 추방당하는 모모, 흑인이라서 아랍인이라서 개 취급당하는 무지개 마을의 라민느·이마드.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자유롭게 들락일 수 있는 도모에 학원은 어디인가?

때묻지 않은 동심을 지켜주는 것, 튀는 아이들이 자신의 개성과 창의력을 발휘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지내도록 해주는 것이 18층 호텔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거리는 엘로이즈가, 창가에 서서 친동야를 부르는 토토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어 하는 홀든이 우리에게 남겨놓은 몫이다.

도모에 학원 교문의 듬직한 나무처럼, 아이들 눈높이에서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열린 교육·참교육을 실천한 고바야시 소사쿠 선생님처럼 되라고.

오현아 Books 기자 (peru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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